법무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6일 주최한 ‘상법 개정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손경식 경총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법무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6일 주최한 ‘상법 개정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손경식 경총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근로시간 단축 및 최저임금 인상, 공정거래법 강화, 협력이익공유제 도입 등으로 경제 심리가 위축되고 기업의 투자 의지마저 크게 꺾였습니다. 상법 개정안까지 추진되면 기업들의 부담은 더 커질 것입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26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만나 건넨 말이다. 기업들이 ‘규제 폭탄’에 짓눌린 상태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법 개정안까지 국회를 통과하면 제대로 숨쉬기도 어려워질 것이란 호소다. 개정된 상법이 시행되면 국내 기업들이 외국 투기자본에 안방을 내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손 회장의 우려다.

여·야·정은 최근 국정상설협의체를 구성하면서 상법 개정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조만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를 열고 이를 협의할 방침이다. 여당과 정부가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경제민주화’ 추진과 맥을 같이한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지배구조를 바꿔야 정경유착 관행을 없애고 소액주주도 보호할 수 있다는 게 당정의 판단이다.
손경식 경총 회장 "상법 개정 땐 외국 투기자본의 공세 거세질 것"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다.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하는 제도다. 이때 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대주주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감사위원을 따로 뽑고 선출 과정부터 의결권을 제한해야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여권의 주장이다.

기업엔 비상이 걸렸다. 지분 쪼개기(3% 이하)를 통해 의결권 제한 규정을 피할 수 있는 외국 투기자본이 대기업 감사위원 자리를 ‘싹쓸이’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어서다. 감사위원은 이사를 겸임하기 때문에 외국계 투기자본이 감사위원을 장악하면 무리한 배당이나 자산 매각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기업들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당 새로 뽑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한 명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현행 상법 역시 집중투표제를 허용하고 있지만, 개별 회사가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 당정은 이를 법으로 의무화해 소수주주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들은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 이사회에 진출하는 ‘통로’가 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외국 투기자본 지분율이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최소 비율(1/총 선임이사 수+1)을 넘어서면 ‘몰아주기’ 투표로 무조건 한 명 이상을 원하는 사람으로 뽑을 수 있다.

재계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와 집중투표제가 함께 도입되면 ‘재앙’ 수준의 위협이 닥칠 것으로 우려한다. 상당수 기업의 이사회 멤버 절반 이상이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갈 공산이 커서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경영권 방어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의 틈을 파고드는 헤지펀드의 공세가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창민/도병욱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