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이 물 건너갔다는 소식이 전해진 23일 경제계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최저임금 인상 및 주 52시간 근로제(근로시간 단축) 도입,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추진 등 잇따른 친(親)노동정책에 짓눌린 가운데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기대마저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납기 맞추기엔 시간 절대 부족…'범법 기업인' 속출할 것"
기업들 사이에선 “내년 노사 갈등의 불씨만 키워놨다. 내년 사업계획까지 다시 짜야 할 판”이라는 하소연이 터져나오고 있다. 정보기술(IT) 및 건설, 플랜트, 조선 등 특정 기간에 일이 몰리는 기업들은 마땅한 대책이 없어 ‘초비상’이다.

탄력근로제는 최대 3개월 단위로 근무시간을 조정해 주당 평균 40시간을 일하는 제도다. 특정 기간에 업무가 많은 생산직의 근무시간을 조정하기 위해 주로 활용된다. 그동안 기업들은 연중 일감이 고르지 않고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는 업종에선 탄력근로제 기간을 6개월~1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한 대기업 임원은 “탄력근로제 기간이 늘어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며 “당장 내년 노조와의 임금단체협상에서 탄력근로제 기간을 설정해야 하는데, 되레 갈등만 커지게 됐다”고 답답해했다.

건설 및 플랜트, 석유화학, IT 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해외 건설 현장에서는 3개월로 짜여진 탄력근로제 시간에 맞추려면 발주처와 약속한 공기(工期)를 지키기 쉽지 않다는 게 이들 기업의 호소다. 프로젝트 단위로 사업이 진행되는 시스템통합(SI) 및 게임 개발 등의 업종도 특정 기간 집중적인 근무가 불가피할 때가 많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신제품 출시 경쟁을 벌이는 스마트폰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문 생산이 많은 중소기업의 고민은 더욱 크다. 금형 업체는 유럽 및 미국에서 일감을 수주하면 선적까지 6~8주간 밤·주말 근무를 해야 겨우 납기를 맞출 수 있는데, 집중근무 시간이 3개월로 제한되면 납기를 맞추기가 어려워진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내년부터 범법자로 내몰리는 기업인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올 연말로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관련 계도 기간이 끝나 내년부터는 위반 업체의 대표이사가 처벌받게 되기 때문이다. 한 중소기업의 노무담당 임원은 “회사 직원 및 노조가 고소·고발을 하면 처벌을 피할 길이 없다”며 “납기를 맞추려다 회사 대표가 범법자가 될 판”이라고 걱정했다. 노조가 근로시간 위반과 관련한 고소·고발을 사측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하면 기업 경영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