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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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닛산자동차가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고 탈세 등의 혐의로 검찰에 체포된 카를로스 곤 회장(64)의 해임안을 처리했다. 이로써 1999년 닛산의 구조조정을 이끌며 지난 19년간 경영권을 장악했던 곤 회장 체제가 막을 내렸다.

곤 회장은 5년간 50억엔(약 500억원) 보수를 축소 신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체포된 이후에도 회삿돈 유용 혐의 등이 일본 언론을 통해 잇따라 제기됐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곤 회장이 해임되면서 20년가까이 이어져온 르노와 닛산의 동맹관계도 불투명해졌다. 향후 양사의 연합관계는 물론 자본 제휴가 유지될지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닛산이 출자한 미쓰비시도 다음주 이사회를 열어 곤 회장의 해임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곤 회장은 닛산을 재건시켜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 CEO(최고경영자) 반열에 올랐으나 끝내 일본에서 비리 혐의에 해임되는 수모를 당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곤 회장의 불투명한 경영체제를 개선하고 사이카와 히로토 사장이 12월 이사회에서 후임 회장이 결정되기 전까지 잠정적으로 회장직을 겸한다"고 전했다.

곤 회장 사태 직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경영권을 두고 프랑스와 일본 정부 간 다툼이 본격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곤 회장의 체포는 양사 정부 간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FT는 "곤 회장이 일본 검찰에 체포되기 전에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계획했고, 닛산은 이를 반대해 합병을 막기 위한 길을 찾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르노는 현재 닛산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다. 닛산은 미쓰비시 지분 34%, 르노 지분 15%를 각각 갖고 있다. 르노가 가진 닛산 주식은 의결권이 있지만 닛산의 르노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닛산 내부에선 경영 통합시 르노에 경영권을 빼앗길 것이란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닛산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르노와의 불평등 관계를 바로 잡으려고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르노가 닛산과 제휴를 발표했던 1999년 당시 르노 부사장이던 곤은 닛산의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돼 1조4000억엔의 부채를 갖고 파산 직전에 몰렸던 닛산을 2년 만에 흑자 경영 체제로 바꿔놨다. 당시 곤은 전체 직원의 14%(2만1000명)를 감축하고 20개 판매사의 사장 교체, 비생산적인 공장 폐쇄, 20% 구매비용 삭감 등을 통해 2000년 4월부터 2001년 3월까지 3300억엔의 흑자를 내 닛산 리바이벌 플랜(회생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닛산의 부활로 곤 회장은 '코스터 커터' '아이스 브레이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CNN과 타임지가 공동으로 선정한 '2001년 글로벌 비즈니스 파워'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빌 게이츠를 제치고 1위에 뽑히기도 했다.

르노가 2012년 르노삼성의 적자 구조를 없애기 위해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감행했던 건 닛산의 회생 전략에서 가져온 것이다.

곤 회장의 거침없는 야망은 2016년 미쓰비시 지분을 인수해 르노·닛산·미쓰비시 3사 동맹 결성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3사 연합의 글로벌 판매량은 1060만대로 몸집을 키워 도요타자동차를 잡고 독일 폭스바겐그룹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르노와 닛산은 그동안 엔지니어링, 제조, 부품, 구매, 인력 등 다방면에서 협력했다. 지난해 기준 세계 시장 판매량은 닛산이 580만대로 르노(370만대)보다 많다. 두 회사간 동맹은 서로 약점을 보인 사업군을 채우기 위해 이뤄졌다. 닛산은 르노보다 수익과 판매가 앞섰으나 유럽 공략을 위해선 르노를 활용해야 했다. 르노는 닛산보다 마진이 좋았으나 닛산이 강세였던 중국과 미국에서의 영향력은 전혀 없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실 르노와 닛산은 몇 년째 마찰이 계속됐고 이번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것은 세계 통상 환경이 보호무역, 자국우선주의로 가는 맥락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르노와 닛산 관계는 합병이 아닌 얼라이언스 체제이기 때문에 앞으로 르노의 지배력이 약화되면 자본 협력보단 경영권을 분리시키고 기술 협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정훈 한경닷컴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