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리스크'에 떠는 기업들

최저임금 인상·주 52시간 이어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추진하자
기업들 긴급회의 열고 대책 논의

고용부는 노조 말만 듣고 현대重 본사 압수수색 나서
"파업때 대체근로 막는 제도는 영업자유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1일 하루 동안 총파업을 벌였다.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이날 오전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1일 하루 동안 총파업을 벌였다.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이날 오전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정부가 친(親)노조 정책을 쏟아내면서 기업들이 떨고 있다. 정부가 겉으로 “노동계도 절제하고 타협, 양보하는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며 노조와 거리를 두는 발언을 내놓지만, 실제로는 노동계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불만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20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이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등의 내용이 담긴 권고안을 발표하자 경제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한 대기업 노무담당자는 “해직자와 임금 교섭을 하고 노조 전임자에게는 고액 연봉을 지급해야 할 판”이라고 탄식했다. 파업 때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등 경제계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노조 요구만 수용하면 ‘노조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게 기업들의 우려다.

친노조 정책에 기업 수사 압박까지

21일 경제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요 그룹 노무팀은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에 전화를 걸어 관련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전날 정부 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발표한 뒤 나타난 후폭풍이다. 공익위원들은 해고자 및 실직자 노조 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 조항 삭제 등을 권고안에 담았다.

親노조정책 쏟아내는 정부…"대체근로 막는 나라, 한국·말라위뿐"

4대그룹의 한 노무담당 임원은 “재계의 목소리는 완전히 무시한 채 노동계 요구만 일방적으로 수용한 권고안”이라며 “더 이상 한국에서 기업하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고 비판했다.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친노조 정책이 잇따라 나온 상황에서 노동계의 힘을 대폭 키워주는 경사노위 공익위원 권고안이 더해지자 충격이 크다”고 전했다.

정부는 2년 연속 최저임금(내년 시간당 8350원)을 급격하게 올린 데 이어 올 들어서는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주휴수당을 받는 휴일도 근로시간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시행령을 내놓았다. 재계의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단축(주 52시간제)도 강행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고자 노조 가입을 허용하자는 권고안까지 나오자 경제계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각종 조사와 수사를 통해 기업을 압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이날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사측이 조합원을 관리하고 노조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고용부는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고용부가 노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발 빠르게 대기업을 압수수색한 건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지나친 행보”라는 반응이 나왔다.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을 수 있을까

경제계는 내년 1월까지 이어질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2차 논의를 정부의 노사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 전날 발표한 권고안은 단결권에 대한 내용만 포함됐지만, 향후 논의에서는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경총 관계자는 “단결권을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노동계가 요구한 내용이 많이 포함될 수밖에 없지만,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와 관련해서는 사용자 측이 강하게 요구할 사안이 많다”며 “정부가 이를 얼마나 수용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경사노위는 이르면 다음주 관련 논의를 시작한다.

경제계는 노조가 파업을 하더라도 사용자가 대체근로를 못하도록 막는 제도(노동법 제43조)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체근로 금지가 사업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기본적 권리를 제한하고 있어 영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설명이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는 대체근로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 법으로 대체근로를 막는 나라는 한국과 동아프리카에 있는 말라위밖에 없다는 게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외국에서는 쟁의행위를 사업장 밖에서 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공장과 생산라인을 점거하는 게 익숙한 풍경이 됐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지난해 말 쇠사슬로 생산라인을 묶은 게 대표적이다. 재계는 독일 등 선진국처럼 직장폐쇄 요건을 완화해달라고 주장한다. 미국처럼 노조의 불법 및 폭력적인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해 처벌할 수단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하고 있다.

경제계는 노사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달라는 요구도 할 예정이다. 현행법은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단협 협상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기간을 4년으로 늘리면 노사 갈등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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