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선사인 현대상선이 1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좀처럼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을 우려하며 유창근 사장 등 경영진 책임론과 강력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해운업계는 글로벌 해운사들의 저가 운임 공세와 고유가, 용선료(선박 임대 비용) 부담 등 외부 요인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일부에서는 무역 의존도가 70%를 웃도는 한국 경제 특성상 국적 선사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4분기 연속 적자 현대상선…경영진 책임? 3重 외부악재 탓?
채권단 “고강도 구조조정 필요”

현대상선은 지난 3분기(7~9월) 123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 들어 누적 적자만 4929억원에 달한다. 작년 연간 적자(4068억원)를 3분기 만에 넘어섰다. 2015년 2분기부터 14분기 연속 적자를 내며 이 기간 누적 적자만 1조9800여억원으로 불어났다. 2017년 2월 한진해운 파산 이후 현대상선에 2조원가량을 지원해온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경영진 책임론을 들고나온 배경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상선 정상화를 위해서는 추가로 5조원을 더 투입해야 할 상황”이라며 “현대상선도 구조조정을 포함한 고강도 자구계획안을 마련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게 채권단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3중고’에 시달리는 해운업

현대상선의 주력인 컨테이너선 업황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올해 평균 835로 작년 평균(829)보다 0.7% 오르는 데 그쳤다. 2013년(1075)과 2014년(1069)에 비해서는 여전히 20% 이상 낮다. 글로벌 물동량이 증가했지만 컨테이너선 공급 과잉이 이어진 탓이다. 국내 연근해 컨테이너선사인 흥아해운이 올 3분기까지 259억원 영업적자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와중에 글로벌 선사들은 몸집을 불리면서 현대상선 등 중위권 선사를 고사(枯死)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 해운업은 선복량(적재량)이 많을수록 운송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41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한 개)로 세계 1위 머스크(401만TEU)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국제 유가도 현대상선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선박에 주로 쓰이는 벙커C유 가격은 이달 t당 499달러로 1분기(376달러)보다 32.7% 뛰었다. 운송비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30%에 달한다. 현대상선의 지난 3분기 유류비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731억원 증가했다.

해운 업황이 좋을 때 비싼 가격으로 계약한 용선료도 부담이다. 현대상선과 채권단은 2016년 6월부터 2020년 1월까지 해외 선주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용선료 2조5000억여원 가운데 5300억원만 출자전환과 장기채권 지급 등으로 조정하는 데 성공했다. 연평균 용선료가 여전히 5700억원을 웃돈다.

국적 선사 중요성 커

산업은행이 최근 유 사장 등 경영진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화물 운송을 맡기는 화주를 확보하는 작업과 글로벌 얼라이언스(해운동맹)에 가입하기 위한 협상도 지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 운항과 선박 공유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해운동맹 가입과 글로벌 화주 확보는 현대상선 회생을 위한 필수 과제로 꼽힌다.

전문가들도 공적자금이 투입된 현대상선의 경영진에 대한 자극은 필요하지만 국적 선사의 경쟁력을 해치는 쪽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져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전준수 한국해양대 경영학과 석좌교수는 “국적 선사가 사라지면 한국 수출 기업은 20~30% 비싼 운임을 내고 해외 선사를 이용해야 한다”며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만큼 안보 측면에서도 국적 선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