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동주민센터 직원들까지 동원해 제로페이 가맹점 확보에 나서는 것 자체가 제로페이가 ‘관제페이’라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가 다음달 시범사업 시행이라는 시간표에 쫓긴 나머지 직접 나서면서 무리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공공사업으로 변질된 제로페이

"'박원순표 제로페이' 홍보전단 돌리라네요"
서울시가 수수료 제로를 목표로 새로운 결제시스템(제로페이 또는 서울페이)을 도입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건 6·13 지방선거가 끝난 지난 6월 말이다. 당시만 해도 서울시는 은행과 간편결제사업자 등 민간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공공분야는 인프라 지원에 주력하는 민관협력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어 지난 7월엔 주요 은행과 간편결제사업자를 대상으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문제는 서울시가 제로페이 도입 시점을 연말로 못박았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 내부에서도 올해 서비스 도입은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및 정무라인에서 연내 도입을 수차례 강력 주문했다”고 털어놨다. 당초 서울시는 민간이 주축이 되는 비영리법인인 ‘서울페이 허브 설립준비단’(가칭)에서 가맹점을 확보할 방침이었지만 구청과 동주민센터 공무원들을 직접 동원하기로 9월께 계획을 바꿨다.

서울시가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 업체를 선별하는 등 시장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당초 민관협력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한 서울시는 지난 8월께 갑자기 제로페이는 공공사업이라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신용카드사 및 밴(VAN·결제대행)사들의 참여도 원천 배제했다.

은행에 수수료 부담 강요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에서도 서울시가 제로페이 도입을 위해 은행들을 압박하는 등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은행들이 모두 수수료 제로화에 합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시장도 지난 8월 “서울페이는 민간과의 협력 아래 이뤄지는 사회적 협치의 자랑스러운 사례”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반면 은행들은 소상공인 수수료 절감이라는 취지에 공감해 MOU에 참여했을 뿐 수수료 전액 포기를 약속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수수료 제로는 은행들과 간편결제 사업자가 이체수수료와 플랫폼 운영비를 전액 부담한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서울시는 연 매출 8억원 이하 가맹점으로부터는 수수료를 전액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서울시 소상공인 66만 명이 모든 결제를 제로페이로 할 경우 은행이 포기해야 하는 수수료는 연간 약 760억원에 달한다. 내년부터 제로페이 가맹점 관리 및 확보 등을 전담하기 위해 출범할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도 사실상 은행이 운영 경비를 부담하게 될 전망이다.

은행들은 제로페이가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매년 포기해야 하는 수수료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 “제로페이가 영속적으로 운영되려면 수수료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강경민/안상미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