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 사진=현대차그룹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 사진=현대차그룹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또 다시 현대자동차그룹을 공격하고 나섰다. 주주 환원 확대와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 등을 요구했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제동을 건 뒤 세 번째다.

그룹의 핵심인 현대자동차가 3분기 ‘어닝 쇼크(실적충격)’를 낸 상황이어서 압박이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내년 초 그룹 지배구조 개편 방안 발표와 최근 주가 하락으로 단순 ‘입김’을 행사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엘리엇은 지난 13일 현대차그룹에게 보낸 서신에서 “현대차그룹은 심각한 초과 자본 상태”라며 “초과자본금을 환원하고 자사주(자기회사 주식) 매입을 우선 검토하라”고 요구했다.

또 “주요 계열사들에 독립적인 신규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한다”며 “지배구조 개편 방안은 주주들과 적극적으로 협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밖에 지난 5년간 인수한 비핵심 자산에 대한 전략적 활용 검토 등을 주장했다.

이번 엘리엇의 움직임은 앞선 두 번의 서신과 비교할 때 별다른 내용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종의 ‘현대차그룹 흔들기’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서한은 전혀 새롭지 않다”며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내놓기 전에 먼저 주주들을 설득,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작업”이라고 봤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도 “지난 5월과 9월 밝힌 서신과 특별한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며 “현대차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에 투자한 금액의 손실을 메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엘리엇은 현대차 지분 3.0%, 기아차 지분 2.1%, 현대모비스 지분 2.5%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분 변화가 없다는 가정 아래 투자한 금액의 약 30%인 5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의 ‘맏형’인 현대차 주가는 지난 13일 장중 한때 9만9600원까지 떨어졌다. 2009년 12월1일(장중 9만9000원) 이후 약 9년 만에 10만원 선이 붕괴됐다. 올 들어선 지난 1월23일 16만7500원(장중 기준)에 52주 신고가를 찍은 뒤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대한 공세에서 엘리엇의 미묘한 온도 차도 감지되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 번 비공개로 서신을 보낸 뒤 한 달이 지나서야 그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달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요구를 곧바로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다. 손실로 인해 엘리엇의 입장이 난처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엘리엇이 무리한 요구를 거듭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내놓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행동에 나설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현대차는 올 들어 한 차례 주주가치 제고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면서 “경영 전반에 참여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지난 4월 말 보통주 661만 주, 우선주 193만 주 등 854만 주를 소각한다고 발표했었다.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은 2004년 이후 14년 만이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계열사의 경영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3분기 영업이익 2889억원을 거둬 국제회계기준(IFRS)이 적용된 2010년 이후 가장 부진했다. 기아차의 경우 영업이익이 1172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주요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에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까지 더해져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박상재 한경닷컴 기자 sangj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