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형 조선사 가운데 지난 3분기 선박 수주에 성공한 곳은 전남 해남의 대한조선(8척) 한 곳뿐이다. 같은 기간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한 중형 조선사도 대한조선(3척)과 부산의 대선조선(1척) 두 곳에 그쳤다. 올해 한국 조선업이 7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연간 수주량에서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을 전망이지만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를 제외한 중형 조선사들은 수주 부진 속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한국 조선업에 햇볕?…중소 조선사는 '혹한기'
뒷걸음질치는 중형 조선사

11일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국내 10개 중형 조선사(한진·STX·성동·대한·SPP·대선·한국야나세·연수·마스텍·삼강S&C) 수주 실적은 43만6000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2% 줄었다. 수주액도 전년보다 38.1% 감소한 7억5000만달러에 그쳤다.

같은 기간 조선 빅3를 포함한 국내 전체 선박 수주 실적은 지난해 동기 대비 70.5% 증가한 950만CGT에 달했다. 수주액도 39.2% 늘어난 189억9000만달러에 이른다. 올해 선박 수주 증가분 대부분을 빅3가 가져간 셈이다.

중형 조선사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2010년 39억5000만달러를 수주해 국내 조선시장에서 12.6% 점유율을 기록했던 중형 조선사의 올 3분기 점유율은 3.9%(7억5000만달러)에 그쳤다. 상반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성동조선해양은 그리스 선사로부터 따낸 유조선 5척의 수주가 취소되는 등 일감이 바닥난 상태다. 나머지 중형 조선사도 수주 부진 여파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어렵게 따낸 수주마저 포기

해운업계가 단위당 운송 비용 절감과 환경 규제 대응 차원에서 대형 선박을 주로 발주하고 있어 중형 조선사 먹거리 자체가 줄어드는 게 수주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올 3분기까지 중형 조선사가 주로 건조한 1만DWT(재화중량톤수)급 선박 발주량은 693만CGT로 작년보다 8.7% 감소했다.

중형 조선사는 은행의 보증 기피로 어렵게 따낸 수주마저 포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STX 고성조선소를 인수한 삼강S&C는 유럽 선주로부터 중형 유조선 4척을 수주했으나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받지 못해 지난 8월 수주가 취소됐다. STX조선해양도 같은 달 RG 문제로 7척의 탱커 수주 계약이 물거품이 됐다.

RG는 조선사가 주문받은 배를 넘기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은행이 발주처에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겠다고 보증 서는 것을 말한다. 선주는 RG 발급을 확인한 뒤 최종 계약에 서명한다. 이를 발급받지 못하면 수주 계약은 자동 취소된다. 금융권은 중형 조선사들이 선박을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값에 계약을 맺은 ‘저가 수주’로 판단해 RG 발급을 거절하고 있다.

중형 조선업계는 RG 발급 규제부터 풀어달라고 호소한다. 중형 조선사가 모인 경상남도와 창원시 등도 정부와 산업은행 등에 적극적인 RG 발급을 요청한 상태다. RG 발급 문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중 발표할 조선업 활성화 대책에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중형 조선사 영업담당 임원은 “선박 기자재업체 등 협력사 상당수가 부도 위기”라며 “경비정과 특수선 등 정부 발주 선박 건조를 중형 조선사에 맡기는 등 정책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