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 노사관계 관행·제도개선위원회(노사관계위)가 경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 허용 등을 담은 논의 결과를 이달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계가 요구해온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의 사안은 근로자의 단결권 확대를 골자로 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관련 논의에 밀려났다. 정부와 친(親)노동계 위원이 절대 다수인 노사관계위가 사실상 결론을 정해 놓고 경영계를 들러리로 세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답' 정해둔 노사관계委…"경영계는 들러리"
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정부, 경영계 등에 따르면 노사관계위는 이달 중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논의를 마치고 그 결과를 국회에 넘기기로 했다. ILO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균등대우 등 4개 분야 8개 조항이다. 우리나라는 이 중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87호와 98호, 강제노동 금지와 관련해 29호와 105호를 비준하지 않았다. 87호와 98호는 공무원·교사의 노조 결성과 가입, 해고자의 노조 가입, 노조 설립요건 완화 등과 직결돼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정부는 ILO 창립 100주년인 내년까지 비준과 관련 법 개정을 마무리짓는다는 계획이다.

노사관계위는 지난 7월20일 첫 회의 이후 지금까지 총 11차례 전체회의를 했다. 노사관계위는 노동계 2명, 경영계 2명, 정부 1명, 공익위원 8명(위원장 포함), 경사노위 간사 등 총 14명으로 구성됐다. 공익위원 중 경영계 추천 위원은 2명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논의 주제 하나하나가 노사관계와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사안임에도 사용자 측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게 경영계 지적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위원회 출범 취지가 ILO 핵심협약 비준 안건을 포함한 노사관계 전반에 관한 논의를 하자는 것이었는데 ILO 협약 비준만을 위한 논의기구가 돼 버렸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영계가 들러리를 서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관계위 공익위원들은 최근 ‘입법과제에 대한 노사정 합의서’ 초안에 이어 1차 수정안을 위원들에게 전달했다. 공익위원 제안서에 담긴 주요 의제는 대부분 ILO 협약 비준과 직결된 단결권에 관한 것이다.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 중인 노조 설립신고제 폐지, 교사·공무원의 노조 가입 범위 확대, 해고자·실직자 및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의 노조 가입 및 설립 허용이 주요 내용이다.

경영계 요구 사안인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의 의제는 추후 논의 과제로 미뤄졌다. 공익위원 제안대로라면 전교조 합법화는 물론이고 실체를 갖추지 못한 노조의 난립, 해고자와의 임금 협상 등이 불가피해져 향후 노사관계가 더 악화할 것이라는 게 경영계의 우려다.

힘의 균형을 잃은 논의 구조와 폐쇄적인 논의 방식에 대한 지적도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LO 협약 관련 논의 의제는 하나같이 집단적 노사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사안들임에도 파급효과 등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