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 타결 가능성이 얘기되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 지난 2일 아시아 증시를 밀어올린 ‘트럼프 대통령의 미·중 무역합의문 작성 지시’ 보도를 부인하면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협상 타결 낙관론’을 밝혀 미 증시를 혼란에 빠뜨렸다.

◆엇갈린 메시지에 시장은 ‘갈팡질팡’

트럼프 "진전 있었다" 커들로 "합의 지시 없어"…해석 놓고 美증시 '온탕냉탕'
지난 2일 뉴욕증시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시작은 급등세였다. 이날 새벽 마감된 아시아 증시가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협상 합의문 작성을 지시했다”는 블룸버그통신 보도로 급등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이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협상 초안 마련을 지시받은 일이 없다”고 반박하자 증시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커들로 위원장은 “중국 무역과 관련해 큰 움직임은 전혀 없다”며 “합의로 넘어가는 지점에 있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오전 198포인트 올랐던 다우지수는 상승 폭을 모두 반납하고도 한때 300포인트 넘게 빠졌다.

혼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커들로 위원장 발언이 나온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중국과 협상 타결이 가까워졌다”며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다시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對)중국 강경파로 꼽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11월30일~12월1일 아르헨티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중국과 합의를 추진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중 무역전쟁을 두고 대통령과 행정부 최고위 관료들이 계속 딴소리를 한 것이다. 다우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낙관적 발언 덕에 다소 낙폭을 줄였지만 끝내 상승세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시장에선 5일 개장하는 아시아 증시가 이런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 주말 미·중 무역전쟁 타결 기대로 한국 코스피지수를 비롯해 아시아 주요 증시는 2% 넘게 올랐다.

◆“미·중 갈등 단기간 해결 어려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진전’ 발언은 특유의 허풍이거나 6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증시를 달래려는 ‘선거용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산운용사 감코인베스터의 하워드 워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주가를 올리기 위해 말을 바꾸고 있다”며 “중국과 미국 간에는 그동안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뿐만 아니라 미 외교가에서도 미·중 무역전쟁이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중 무역갈등은 단순히 ‘무역적자를 얼마나 줄일 거냐’가 아니라 미·중 간 패권전쟁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신냉전’이란 말이 나올 만큼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법무부, 상무부 등은 중국의 기술 절도와 특허 침해 같은 불공정 무역관행을 문제 삼은 데 이어 중국 산업스파이와의 전쟁도 선포했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인 D램 제조사 푸젠진화와 미국 기업의 거래를 제한하고 이 회사를 기술 절도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재무부는 중국을 겨냥해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을 바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국방부는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는 동시에 군비를 늘리고 있다. 미국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중국과 무역전쟁을 끝낼 가능성이 작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커들로 위원장은 3일에도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화가 잘 진행되더라도 미·중 합의는 길고 어려운 프로세스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제1회 국제수입박람회 개막 연설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에 파격적인 양보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워싱턴=주용석/뉴욕=김현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