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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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지난 9월 은퇴를 선언하면서 뒤를 이을 장융(張勇) 최고경영자(CEO)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융은 알리바바가 창립 20년을 맞는 내년 9월10일 회장직에 오를 예정이다. 장융은 이미 2015년 5월부터 알리바바 CEO로서 회사를 이끌어왔지만 창업자 마윈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했기에 대중적으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마윈은 은퇴 계획을 밝히면서 “장융이 나보다 잘할 것이라고 100% 믿는다”고 말했다. 창업자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시가총액 3400억달러(약 387조원) 기업의 선장이 된 장융은 어떤 사람일까.

대박난 광군제 성과 앞세워 승승장구

장융의 사회 초년생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상하이재경대 금융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영국계 베어링은행 입사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베어링은행이 1995년 파생상품 거래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고 파산하면서 진로를 바꿔야 했다.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에 취직했으나 이 회사가 엔론 분식회계 사건으로 해체되면서 또다시 새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마윈이 100% 믿는 후계자 장융 알리바바 CEO
회계·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상하이지부가 장융의 다음 직장이었다. 알리바바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은 것은 PwC를 떠나 온라인게임 회사인 샨다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던 2007년 8월이었다.

장융은 항저우에 있는 알리바바 본사에서 마윈과 만나 한 시간 정도 대화한 뒤 이직을 결심했다. 장융은 “전자상거래산업이 시작 단계에 있었고 미래가 밝아 보였다”며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고 회고했다.

장융이 알리바바에서 맡은 첫 직책은 온라인쇼핑몰 타오바오의 CFO였다. 세계 최대 쇼핑 이벤트로 자리잡은 광군제(光棍節)가 그의 작품이다. ‘광군’은 중국어로 배우자나 애인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독신자들이 매년 11월11일 평소 갖고 싶던 물건을 사면서 외로움을 달랜다는 얘기를 들은 장융은 이날에 맞춰 파격적인 할인 행사를 기획하기로 했다.

알리바바의 광군제 매출은 첫해였던 2009년 5000만위안(약 82억원)에서 지난해 1680억위안(약 27조원)으로 늘었다. 미국 최대 쇼핑 행사인 블랙 프라이데이(11월 넷째 금요일) 매출을 뛰어넘었다. 장융은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2011년 알리바바 계열 티몰 CEO로 승진했다. 이어 2013년 9월 알리바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15년 CEO에 올랐다.

마윈이 100% 믿는 후계자 장융 알리바바 CEO
디테일을 꼼꼼히 챙기는 경영자

마윈이 후계자로 장융을 지명했을 때 일부에선 다소 의외라는 얘기도 나왔다. 장융이 여러 가지 면에서 마윈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윈은 활달한 성격에 큰 그림을 제시하면서 조직을 이끌어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해 재무통인 장융은 내성적인 성격에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리바바, 마윈이 지은 집》의 저자 던컨 클라크는 “장융은 남의 이목을 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티몰의 마케팅 임원이었던 잉훙은 “장융은 큰 전략과 세부 사항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추구한다”며 “그는 모든 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장융 스스로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마윈은 아이디어가 많고 대단히 창의적인 사람”이라며 “그와 비교하면 난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윈은 장융이 미래를 내다보고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 있다고 전했다. 마윈은 “장융은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사업 모델을 시도할 배짱이 있다”고 말했다. 조지프 차이 알리바바 부회장은 “지성과 열정에서 장융을 따라갈 사람은 없다”며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겸손한 면도 리더로서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자유분방한 면도 있다. 알리바바 임직원들은 저마다 별명을 하나씩 갖고 있다. 장융이 스스로에게 붙인 별명은 ‘샤오랴오쯔(逍遼子)’다. 중국 작가 진융(金庸)의 무협소설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무술 고수의 이름에서 따왔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의 명함에도 이 별명이 적혀 있다.

과제는 온·오프라인 결합과 해외 진출

장융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애플이 휴대폰을 재정의했듯이 알리바바는 유통을 재정의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목표 아래 ‘신유통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해 소비자가 오프라인 상점, 인터넷, 스마트폰 등으로 자유롭게 상품을 주문하고 원하는 시간에 배달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신유통 전략의 핵심이다.

알리바바가 올 들어 음식배달 서비스 기업 어러머를 인수하고 스타벅스와 커피배달 서비스를 위해 제휴한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세계 어디서 어떤 상품을 구매하든 72시간 안에 배달을 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알리바바의 목표다.

해외 진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장융은 알리바바의 해외 매출 비중을 5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알리바바 온라인쇼핑몰에 더 많은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알리바바 쇼핑 앱(응용프로그램)과 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를 외국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헤쳐나가야 할 난관도 만만치 않다. 신유통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선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야 한다. 텐센트 징둥닷컴 등 중국 내 경쟁자들의 추격도 뿌리쳐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알리바바의 해외 진출 전략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연간 5억5000만 명의 소비자가 알리바바를 이용한다. 마윈은 2036년까지 20억 명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이제 이 목표를 실현하는 것은 장융의 몫이 됐다. 장융은 평소 “고객의 뒤를 쫓아가기만 해선 안 된다”며 “이전에 본 적이 없지만 고객 마음에 쏙 드는 새로운 상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융이 어떤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로 알리바바의 미래를 열어갈지 주목된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