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산이 해외로 이전됐을 뿐
-고양이 목에 방울 매다는 용기 필요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에서 생산한 완성차는 289만9,556대로, 이 가운데 111만7,366대를 국내에 판매했다. 완성차 수출은 175만9,010대로 집계됐다. 그렇다면 이 같은 실적이 어떤 수준이길래 '위기론'이 불거져 나오는 걸까. 같은 기간을 기준으로 2017년 생산은 316만4,888대, 내수는 115만9,405대, 수출은 194만2,628대였다.전년 대비 생산은 9.2%, 내수는 3.8%, 수출은 10.4%가 각각 감소했다.

단순히 전년에 비해 수치가 줄어든 것만으로 '위기론'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그 동안 생산과 판매를 꾸준히 유지했거나 변동성이 적어야 한다. 그러나 2011년 국내 완성차 생산은 465만 대였고 이후 매년 줄어 지난해는 411만 대에 머물렀다. 6년새 내수는 147만 대에서 156만 대로 10만 대 정도 증가했으니 위기와 거리가 멀다. 반면 수출은 315만 대에서 253만 대로 62만 대가 감소한 만큼 위기론의 진원지다.
[하이빔]자동차산업 위기?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 생산은 왜 줄었을까. 이유는 수출이 부진해서다. 올해 1~9월 완성차 수출은 전년 대비 무려 10.4%나 적은 18만3,618대가 감소했다. 내수도 4만2,039대가 줄었지만 수출 부진의 여파가 절대적으로 컸다.

두 번째 질문, 수출이 부진했던 시장은 어디일까. 지역별로 1~9월 수출을 비교하면 북미 물량이 11만1,200대가 줄었고 중동지역도 6만2,467대 감소했다. 아시아와 중남미도 각각 1만5,754대와 2만3,354대 하락했다. 반대로 EU 이외 지역은 2만2,289대 늘었고, 아프리카도 1만6,974대 증가했다. 결국 북미 물량의 절대숫자가 많다는 점에서 부진을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세 번째 질문, 북미지역에선 어느 나라가 한국차 위기에 영향을 미쳤을까. 단연 미국이다. 올해 9월까지 미국으로 들어간 완성차는 55만9,132대로 지난해 동기(65만3,449대)와 비교해 9만4,317대나 추락했다. 중동의 경우는 사우디의 영향이 컸다. 사우디로 들어간 숫자가 전년 대비 3만9,803대 감소했고, 아랍에미레이트와 이란도 중동 부진의 부수적인 국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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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질문, 미국으로 수출하는 완성차 가운데 부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제품은 무엇일까. 르노삼성이 부산에서 생산하는 로그는 7,901대 줄었고, 한국지엠이 부평에서 생산하는 RV는 2만9,071대 감소했다. 둘을 더하면 3만8,000여 대에 달한다. 그럼 나머지 5만6,300대는 어떤 차종일까.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하는 소형차로 엑센트 2만2,800대, K3 1만7,000대, 쏘울 1만3,000대 등이다.

한국에서 생산한 완성차의 미국 수출이 줄었음에도 기아차의 1~9월 미국 판매대수는 45만2,000대로 지난해 동기(45만7,900여 대)에 비해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 현대차는 50만1,700여 대로 지난해보다 1만대 정도 줄었을 뿐이다. 수출이 감소할 때 현지 생산차종의 판매로 버틴 셈이다.

따라서 올해 자동차산업 위기론의 진원지는 현대·기아차가 아니라 한국지엠으로 모아진다. 특히 트랙스를 비롯한 RV의 미국 수출실적을 회복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또 현대·기아차는 줄어드는 소형 세단 및 해치백의 미국 대체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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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해결방법이다. 대체시장을 개척하거나 키웠을 때 꼭 '한국에서 만들어 현지에 공급해야 할까'를 고민한다는 점이다. 이미 글로벌 곳곳에 생산기지를 갖춘 현대·기아차 입장에선 아프리카에 들어가는 제품을 유럽공장에서 생산, 공급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GM과 르노닛산 또한 미국에 필요한 차를 반드시 한국에서 만들어야 할 필요성에 의문을 갖는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만들어 해외시장에 공급할 때 생산의 장점을 따지지 않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경영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더 이상 생산의 매력이 없는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생산에 필요한 비용은 높지만 결과물로 나오는 제품의 생산은 적어서다. 하루 평균 100원에 10개를 만드는 게 글로벌 평균이라면 한국은 같은 비용으로 7~8개 생산에 머문다는 뜻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생산해야 할 당위성이 떨어지고, 그 결과 수출은 해마다 감소했다.

이런 문제점은 사실 오래 전부터 경영계, 노동계, 산업계, 정부, 정치권 등이 모두 알고 있었다. 다만, 이 문제를 언급하는 건 이른바 '임금'을 줄이거나 '고용 축소'를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거론하지 않았을 뿐이다. 정치인이 언급하기에는 당락(當落)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대통령 또한 선거 때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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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든 생산을 늘려보자는 차원으로 등장한 대안이 광주형 일자리다. 기업이 임금의 절반을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정부가 나머지 임금을 부담해 자동차를 생산하자는 제안이다. 이 경우 100원에 10개를 만들 수 있어 경쟁력이 오를 수 있고, 그에 따라 일자리는 물론 국내 자동차부품산업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문을 닫은 공장(한국지엠 군산공장)을 활용하자는 제안과 새로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다른 완성차공장 대비 낮은 임금이 산업에 영향을 미쳐 전반적으로 근로자들의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주장이 팽배하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위기론' 해결은 자동차를 만드는 개별기업과 일자리에 방점을 두는 정부의 시각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완성차기업은 태생적으로 임금축소 및 비용감소를 위해 구조조정을 원하는 반면 정부와 정치권은 근로자들의 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업과 정치권의 시각이 서로 상반돼 있어 공존 자체가 쉽지 않다. 물론 2011년 이후 매년 줄어 왔던 한국의 자동차 생산실적이 다시 늘어난다면 당장의 문제는 수면 아래로 밀어넣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글로벌 기업들이 완성차를 한국에서 반드시 만들어야 할 당위성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다. 이제는 누군가 나서야 한다. '영국병'으로 산업이 후퇴할 때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수상은 표를 의식하지 않고 개혁을 앞세워 성공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분명 인기없는 정책임을 알면서도 영국의 미래를 위해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하는 상황으로 인식, 악역을 자처했다. 그 결과 영국병을 고쳤고, 자동차산업은 새로운 형태로 성장하는 중이다. 국내도 자동차산업 위기를 근본적으로 없애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고비용 구조는 완성차 수출실적과 한국 내 일자리를 서서히 줄이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