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지방에 배분하는 부가가치세수 비율을 11%에서 2020년 21%로 두 배 가까이로 높이기로 했다. 지자체에 돈을 더 주는 대신 중앙정부가 담당하던 기능을 지방에 이양한다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지방으로 옮길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 운영을 감시할 마땅한 대책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떤 기능 이양할지는 빠져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교육부 등은 30일 국세 대(對) 지방세 비율을 8 대 2에서 2022년 7 대 3으로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재정분권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2단계에 걸쳐 재정분권을 추진하기로 했다. 1단계로 11%(부가가치세수 대비)인 지방소비세율을 내년 15%로 올린 뒤 2020년에는 21%까지 상향하기로 했다. 지방소비세율이란 국세인 부가가치세수 중 지방에 배정되는 비율이다. 정부는 지방세가 내년 3조3000억원, 2020년엔 5조1000억원 늘어나 2년간 총 8조4000억원이 증액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소방안전교부세율을 현행 20%에서 단계적으로 45%까지 높여 8000억원 정도를 추가로 지방에 넘기기로 했다. 대신 중앙정부 기능 이전으로 보조금 등을 끊으면 3조5000억원가량의 지방재정이 줄어든다. 지방교부세도 2조2000억원 정도 감소하는 것을 감안하면 지방재정은 2020년까지 총 6조6000억원이 증가한다.
2020년까지 나랏돈 6.6兆 지자체로 이전…방만재정 부추길 수도
2단계 계획은 지자체와 관계부처의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에 마련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방분권세 도입 등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중앙권한 지방 이양 및 재정분권 추진’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다. 공약집에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속·단계적으로 지방에 이양해 지방의 권한을 확대하겠다’고 돼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날 발표에는 어떤 권한과 책임을 지방으로 넘길지가 빠졌다. ‘2020년 3조5000억원 규모의 기능을 지방정부로 이양하겠다’고만 돼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지방에 넘기겠다는 건지는 명시되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방으로 넘어가는 것은 지역밀착형 사업 위주일 것”이라며 “아직 어떤 기능을 이양할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재부 중심으로 관계부처 기능조정 태스크포스(TF)를 연내 꾸려 어떤 사업을 지방으로 옮길지 정할 예정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정부 사업에는 관계부처와 이해당사자가 얽혀 있기 때문에 지방으로 이전할 사업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재정 방만 운영 방지책도 없어

지방분권을 실현하려면 중앙정부가 어떤 권한과 책임을 지방으로 넘길지가 핵심이다. 이를 생략한 채 지방세부터 늘리겠다는 것과 관련해 정부 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특히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의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기재부의 반대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실질적 지방분권은 재정뿐 아니라 기능, 조직, 인사가 같이 가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치인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안부 장관 등이 지방세 인상안을 연내 발표할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소비세율을 올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조정하면 일부 지자체는 재원이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지난 7월 나라살림연구소에서 받은 연구용역 자료를 보면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7 대 3으로 바뀌면 18개 기초자치단체는 재원이 오히려 감소한다. 중앙정부는 내국세의 19.24%를 지자체에 지급(지방교부세)하는데 지방세가 늘면 국세가 줄어 교부세도 같이 감소한다. 교부세 의존도가 높은 일부 지자체는 늘어나는 지방세보다 줄어드는 교부세가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광역자치단체가 기초자치단체에 배분하는 조정교부금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 지자체에서 재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받는 돈이 늘어남에 따라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 운영이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날 발표에서 지자체의 재정 운영을 어떻게 감시할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방의회가 지자체 견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오히려 지역 이권 사업 등에 개입하는 게 현실”이라며 “재정 운영에 대한 지자체의 책임성을 높이는 방안 없이 돈만 더 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훈/이해성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