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모바일 중고거래 업체 카루셀은 디자인 싱킹을 적용해 고객 만족과 신용도를 높였다.
싱가포르의 모바일 중고거래 업체 카루셀은 디자인 싱킹을 적용해 고객 만족과 신용도를 높였다.
최근 국내외 스타트업 성공 사례를 보면 디자인 싱킹과 닮은 점이 많다. 주변을 관찰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포착한 후 이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만들어 낸다. 그리고 빠르게 시제품(프로토타입)으로 구현해 테스트하고 실제 제품으로 다듬어 나간다. 그래서인지 소위 ‘대박’난 스타트업을 들여다보면 창업자가 디자이너 출신인 경우가 적지 않다. 세계적인 숙박서비스 업체 에어비앤비의 창업자들이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여행자에게 남는 방을 빌려준다’는 생소한 비즈니스 모델로 창업한 후 매출 부진으로 고전하던 에어비앤비는 창업자들이 직접 고객의 집을 방문해 웹사이트에 올라갈 집 사진을 찍어 주면서 고객들의 고민과 아이디어를 듣고 웹사이트를 개선해 나갔다. 현재 에어비앤비는 기업 가치 250억달러의 세계 숙박서비스업 생태계를 바꾼 거대 기업이다.

국내에도 디자이너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 사례가 적지 않다. 기발한 서비스 아이디어와 마케팅 전략으로 유명한 배달주문 앱 ‘배달의 민족’도 창업자가 디자이너 출신이다. 개인신용대출 P2P업계 1위 스타트업인 렌딧도 디자인 전공자가 창업했다. 농업 벤처인 ‘만나’도 디자인과 기계공학을 전공한 두 사람의 결과물이다. ‘만나’는 디자인 싱킹과 정보통신기술을 적극 활용해 ‘스마트팜’에서 재배된 친환경 농산물을 신선식품 정기 배송서비스인 ‘만나박스’를 통해 전국 가정에 배달한다.

# 디자이너 출신 창업 사례 많아

이들은 공통적으로 창업할 당시 마치 디자인 문제를 풀어내듯이 접근했다고 이야기한다. 관심있는 문제를 고객 입장에서 들여다보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았다. 지금도 이들 기업은 서비스 상품, 모바일 앱, 브랜드 로고에 이르기까지 고객과 소통하는 모든 접점에 디자인 창의력을 불어넣는다. 고객 경험을 기업 경영의 중심에 두기에, 다른 기업보다 발 빠르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품을 선보이고, 트렌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디자인 싱킹이 이끈 스타트업으로 싱가포르에는 ‘카루셀’이 있다. 모바일 중고거래 업체인 카루셀은 2012년 첫선을 보인 후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큰 중고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곳의 젊은 창업자들은 대학생 시절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스탠퍼드대에서 창업가를 위한 디자인 싱킹 수업을 들었다. 고객의 잠재 욕구를 파악해 아이디어를 내고, 수없이 실패해 가면서 아이디어를 다듬는 방법을 배웠다.

비슷한 개념의 중고 전자상거래 사이트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카루셀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물건을 팔려는 고객이 무언가를 팔아본 경험이 부족하고 불안을 느낀다는 점에 주목했다. 카루셀에 계정을 만들고 물건의 사진을 올린 후, 설명을 기입하고 가격을 책정하는 과정, 그리고 물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과 가격을 흥정하고 만날 장소를 정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처음 물건을 팔아보는 고객의 입장이 돼 디자인했다. 그 결과, 카루셀의 모바일 인터페이스는 매우 직관적이고 간편하게 설계됐다. 에어비앤비의 사용 후기 남기기 기능처럼,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해 상거래의 신뢰를 보장할 수 있는 기능도 도입했다. 카루셀의 제품 개발 과정은 디자인 싱킹과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한다. 제품 개발 과정의 앞 단계는 사용자 현장 관찰, 온라인 행태 분석, 트렌드 분석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이후 아이디어 창출, 시제품 구현 그리고 사용자 테스트로 이어진다. 제품을 시장에 내놓은 뒤에도 지속적으로 고객 피드백을 모니터하며 개선한다.

# 카루셀 디자인싱킹 도입해 성공

이처럼 세계적으로 디자인 싱킹이 스타트업의 성공 요소로 인지되면서 현재 창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디자인 싱킹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국내 몇몇 대학에서는 디자인 싱킹과 기업가 정신을 접목한 교과목이나 학위 프로그램도 신설하고 있다. 싱가포르에도 학생들에게 디자인 싱킹과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대학이 있지만, 창업에 관심있는 이들이 디자인 싱킹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스킬 퓨처(Skills Future)라고 하는 싱가포르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기존 업무에 새로 요구되는 지식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 직업을 바꾸고 싶은 사람,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정책이다. 25세 이상 싱가포르 국민이라면 누구나 500싱가포르달러(약 40만원)의 기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스킬 퓨처에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데, 직원이 200명 미만이거나 연매출 1억싱가포르달러(약 800억원) 미만 기업의 직원은 수업료의 90%까지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창업가를 위한 디자인싱킹 프로그램은 지원자가 가장 많은 과목 중 하나다. ‘기회 포착하기’와 ‘아이디어 창출 및 관리’를 중심으로 가르친다.

대박 난 스타트업 창업자, 디자이너 출신 많다
존 마에다 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대 총장은 “지난 세기에는 과학과 기술이 경제를 바꿨다면 21세기에는 미술과 디자인이 우리 경제의 변화를 책임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창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이 디자인싱킹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배움의 문턱을 낮추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이정주 <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jjlee@nus.edu.s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