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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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일 오후 데이비드 솔로몬 당시 골드만삭스 공동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회사 건물 41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뉴욕 동부를 흐르는 허드슨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방에 있던 로이드 블랭크페인 당시 최고경영자(CEO)에게서 호출이 왔다. 블랭크페인은 솔로몬에게 “이사회가 결정을 내렸다”며 “당신이 내 후임 CEO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랭크페인은 2006년 취임해 12년간 자리를 지킨 월가의 장수 CEO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평소 “골드만삭스에 영원히 머물겠다. 책상에서 일하다 죽을 것”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던 블랭크페인이 지난 1일 물러나고, 솔로몬이 CEO로 취임했다. 이제 글로벌 금융계는 ‘솔로몬 시대’에 주목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캐시카우

'DJ 디 솔' 예명 쓰는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솔로몬 CEO는 1962년 뉴욕주 하츠데일의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알란 솔로몬은 중소 출판사 임원이었다. 뉴욕 해밀턴대에서 정치학과 행정학을 전공했고 뉴욕에 있는 상업은행인 어빙 트러스트, 드럭셀 번햄 램버트, 베어스턴스 등을 거쳐 1999년 골드만삭스 파트너로 영입됐다.

골드만삭스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2006년 투자은행 부문 대표에 오른 뒤 10년간 이윤을 두 배 가까이 늘렸고, 전체 수익에서 투자은행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11%에서 22%까지 끌어올렸다. 운도 따랐다. 블랭크페인에 이은 2인자였던 게리 콘 COO가 2016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옮긴 덕분에 후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블랭크페인 전 CEO가 사임하고 후임 CEO 승계까지 큰 잡음 없이 이뤄진 것은 골드만삭스의 탄탄한 실적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의 지난 2분기 수익은 94억달러로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9년 만에 최대치다. “(회사) 상황이 어려울 때는 떠날 수 없었고, 상황이 좋아지면 떠나고 싶지 않았다”던 블랭크페인이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골드만삭스가 강점을 갖고 있는 트레이딩 부문이 최근 규제 강화와 금융환경 변화로 어려움에 부딪힌 것도 CEO를 교체한 이유 중 하나다. 솔로몬 CEO는 그간 골드만삭스의 캐시카우(수익원)였던 트레이딩 사업을 계속 키워나가는 동시에 소비자금융 부문에서도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솔로몬 CEO가 트레이더 출신인 하비 슈워츠 공동 사장을 제치고 낙점받은 것도 트레이딩 이외 분야에서 수익을 내야 한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DJ 디 솔' 예명 쓰는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빌보드차트 오른 DJ

솔로몬 CEO는 취임과 동시에 소비자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온라인 금융 플랫폼 ‘마커스(Marcus)’를 개발해 비대면 고금리 예·적금, 개인대출 등 소매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비대면 자산관리 서비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술 인력을 대거 채용해 골드만삭스 직원 3만여 명 중 엔지니어 비중이 30%로 늘었다.

수익모델뿐 아니라 기업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솔로몬 CEO는 평소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스포츠의류 업체 룰루레몬 기업공개(IPO)를 주관하면서 회의석상에 정장이 아닌 ‘애슬레저(일상복과 비슷한 운동복)’ 차림으로 나타나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요즘 골드만삭스는 직원들에게 월가 전통의 정장 차림을 고집하지 않고 캐주얼 복장도 허용한다.

솔로몬 CEO는 DJ이기도 하다. ‘DJ 디 솔(D Sol)’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은 클럽과 음악 페스티벌에서 공연한다. 지난 6월엔 DJ D Sol의 이름으로 낸 리믹스 음악 ‘Don’t Stop’이 빌보드 댄스믹스 차트 39위에 올랐다. 솔로몬 CEO는 “DJ 활동은 나를 인간답게 만든다”며 “젊은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게 말을 건다”고 말했다.

솔로몬 CEO는 최근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개했다. 그는 자신을 “아빠, DJ, 본업은 골드만삭스”라고 소개했다. 골드만삭스의 한 전직 임원은 “솔로몬은 블랭크페인이 되려고 하진 않을 것”이라며 “그는 전임자와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차이를 두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 ‘워라밸 전도사’

솔로몬 CEO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실천하는 경영자로도 유명하다. DJ뿐 아니라 카이트 서핑, 사이클, 골프, 스쿠버다이빙 등 각종 스포츠와 와인 수집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CEO들은 왜 취미 생활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을까’란 제목의 기사에서 솔로몬 CEO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을 정도다.

솔로몬 CEO는 주당 90시간에 달하는 직원 근무시간을 70~75시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밤샘 근무하는 젊은 직원들에게 퇴근을 독려하기도 한다. 그는 “회사는 당연히 열심히 일하는 곳이 돼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관심사나 가족에도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남성 중심의 골드만삭스 문화를 비판하면서 여성을 적극 채용하는 등 양성평등 문화를 조성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솔로몬 CEO는 전임자와 달리 내년 1월 콘퍼런스 콜에도 직접 참석하겠다는 방침이다. 대외적으론 물론 사내 소통도 강조한다. 솔로몬 CEO는 “좀 더 개방적으로 사적인 영역도 공유할 때 직원 간 신뢰가 쌓일 수 있다”며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가 회사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사내 소셜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