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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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의 후폭풍이 발전소 운전·정비분야 견실한 중소기업에까지 미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이들 기업에 소속된 기술 인력에 대해서까지 공기업이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하면서 업계에선 ‘이러다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업체는 직원 일부가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가입해 공기업 직고용에 동조하는 등 행동에 나서 정상 업무가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민간 발전회사까지 불어닥친 정규직 전환

"우리 회사 정규직 70%를 빼가겠다니…이게 민주노총의 정의인가"
24일 발전소 운전·정비업체 수산인더스트리의 박병주 부사장은 “민주노총의 공기업 직고용 주장에 직원들의 동요가 심하다”며 “업계에서 35년 동안 경쟁력을 유지하며 고용도 열심히 해온 기업 인력을 송두리째 빼가겠다니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우리 회사 국내 사업장의 총직원이 510명인데 이 중 370명을 공기업이 직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한마디로 회사를 폐업하라는 얘기인데 이게 그들이 말하는 정의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올초부터 남동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중부발전·서부발전 등 발전 공기업과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운전·정비 업무를 위탁받아 일하는 협력업체 직원 8000여 명을 공기업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운전 인력 5000여 명, 정비 인력 3000여 명 등이다. 이들 중소기업은 수산인더스트리처럼 인력 대부분이 운전·정비 분야 종사자기 때문에 민주노총 주장이 현실이 되면 존립 자체가 어려워진다. 올초만 해도 직원들은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고 반신반의했지만 민주노총과 정치권에서 계속 바람을 넣자 상당수 직원이 공기업 직고용에 동조하고 있다.

◆민간 정규직을 왜 공기업 정규직으로?

다른 운전·정비업체의 한 관계자는 “일부 직원은 벌써 공기업 직원이 된 것처럼 행세해 회사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며 “회사에 말도 안 하고 직고용 투쟁에 나가는 직원도 있다”고 토로했다. 민주노총은 발전소 운전·정비 업무가 공기업의 ‘상시 지속적 업무’기 때문에 직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도 국민의 생명 안전과 밀접한 상시 지속 업무는 직접 고용을 원칙으로 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시 지속 업무라는 이유만으로 직고용해야 한다면 모든 아웃소싱을 없애야 한다는 얘기”라며 “기본적으로 공기업이 담당하는 분야라도 민간의 전문성이 필요할 수 있고 공기업 독점 때보다 효율성이 나을 수도 있는데 이런 것을 모두 무시하고 일괄적인 공기업 직고용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질 것”

발전소 운전·정비 시장은 과거 공기업이 독점했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 민간 전문기업 육성을 시작한 분야다. 민간이 참여해야 시장 경쟁력이 생긴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김대중 정부 때 틀을 잡은 ‘전력산업 독점 방지’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런 정책 덕분에 수산인더스트리와 금화피에스시, 일진파워 등 기업이 매출 1000억원이 넘는 견실한 회사로 성장했다. 금화피에스시와 일진파워 등은 코스닥 상장 기업이다.

수출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것이란 의견도 있다. 박병주 부사장은 “운전·정비 분야도 갈수록 수출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공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헤쳐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서 정비를 맡길 업체를 선정하고 있는데 한국 경쟁국인 미국, 영국은 모두 민간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고용 압박을 받는 공기업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중부발전의 한 관계자는 “정비 업무도 세부적인 분야가 많고 분야별로 업무가 복잡한데 발전사가 민간 업체의 정비사업부를 일괄적으로 받아들이면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천 명의 직원을 받아들이면 결국 세금으로 기관 예산을 늘려야 하는데 국민이 이에 동의할지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