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이 자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짧은 임기를 두고 손질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농협금융 자회사 CEO의 임기는 1년으로 국내 금융회사를 통틀어 가장 짧다. 중장기 경영전략을 세우고 추진하는 데 상대적으로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장기전략 세우기 힘든 자회사 CEO

21일 농협금융에 따르면 이대훈 농협은행장과 오병관 농협손해보험 사장은 각각 올해 선임됐지만 내년 1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금융계에서 CEO 임기가 1년인 것은 드문 일이다. 금융업은 단기 실적보다는 중장기 리스크까지 고려한 경영전략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여서다. 신한·KB·하나금융은 자회사 CEO에 대해 기본 2년 임기 후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도록 한다.

'1년 임기' 농협금융 CEO들…"장기계획 못 짜"
반면 농협금융은 기본 임기가 1년이며 연임은 1년 단위로 가능하다. 농협금융 지배구조내부규범(제3장 38조)상으로는 최초 선임 시 임기는 2년 이내로 하되 연임할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오지만 실상은 1년씩 임기를 두고 있다. 고태순 농협캐피탈 대표와 서기봉 농협생명보험 대표도 지난해 1년씩 기본 임기를 마치고 올해 1년 연임됐다.

이런 ‘초단기 임기’는 김용환 전 농협금융 회장 시절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침이었다. 느슨해지지 말고 실적에 신경 쓰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농협금융 내부에서 이런 인사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중장기 전략을 세우기 어렵고 리스크 관리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지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이다.

'1년 임기' 농협금융 CEO들…"장기계획 못 짜"
현업을 파악하고 전문성을 발휘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것도 한계점으로 꼽힌다. 취임 후 사업장을 다니며 현장 점검을 하면서 2~3개월을 보내고 나면 임기의 4분의 1이 끝나는 식이다. 달라지는 경영환경을 분석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려면 최소 반 년 이상은 걸린다는 전언이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초단기 임기로는 직전 CEO가 추진해오던 업무를 이어받아 추진하는 데 그치는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런 게 반복될수록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쌓을 기회도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해외 대형은행 CEO 평균 임기 5.8년

2005년부터 13년째 JP모간체이스 회장 겸 CEO를 맡고 있는 제이미 다이먼의 사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이먼은 JP모간을 자산·시가총액 기준 미국 최대 은행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초에는 5년 연임이 확정됐다. 국내 은행장의 임기가 3년도 채 안 되는 국내 사정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JP모간체이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은행 등 미국 5개 대형 투자은행 CEO의 평균 재임 기간은 5.8년이다.

김광수 농협금융 회장(사진)이 지난 4월 취임 직후 경영체질 개선 방안 중 하나로 CEO 장기성장동력 평가 시스템을 제시한 것은 이런 점을 고려해서다. 김 회장은 다음달 CEO 장기성장동력 평가 시스템을 확립해 내년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그동안 농협금융 CEO 평가에선 당기순이익 및 내년도 실적 목표평가, 추진 현황이 위주였다.

내년부터 CEO를 평가할 때는 3~5년 중장기 전략 수립 및 추진 상황이 반영될 예정이다. 향후 이 같은 중장기 전략에 대한 비중을 절반까지 점진적으로 늘려가겠다는 목표다. 회사별 최우수고객(VVIP)의 평가도 CEO 평가 때 중요 지표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자회사 CEO 기본 임기 연장을 추진할 방안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자회사 CEO의 임기는 이사회 통과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추진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농협금융 고위 관계자는 “당장 CEO 임기를 늘리는 것은 절차상 어려움이 있어 평가 체계라도 먼저 바꾸는 것”이라며 “갈수록 중장기 전략을 얼마나 고민하고 추진하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