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4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정유, 조선, 건설업계는 원유 재고 평가액 상승과 중동발(發) 건설공사 및 해양플랜트(원유 시추·생산설비) 발주 증가 기대에 들떠 있다. 반면 기름을 연료로 쓰는 석유화학·항공·해운업계는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유가 급등에…정유·건설 웃고, 항공·해운 울상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가가 상승세를 타면서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의 실적 전망에 청신호가 켜졌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가 미리 들여온 원유 재고 평가액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수백억원에 달하는 평가이익이 발생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부담으로 꼽힌다.

건설업계도 고유가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의 사회간접자본(SOC) 공사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으로 떨어진 2014년부터 급감했던 해양플랜트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달 들어 4년 만에 반잠수식 원유생산설비(FPS)를 수주했다. 종합상사들도 유가와 연동해 움직이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자원개발 사업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원유 부산물인 나프타를 가공해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업계는 원료 비용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은 1.4% 오르지만 최종 제품 가격은 0.4~1.0% 상승하는 데 그친다. 증권가에서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주요 석유화학 업체의 올 4분기(10~12월)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두 자릿수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가 상승이 곧바로 수익 감소로 이어지는 항공·해운업계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항공사 영업비용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에 달한다. 국내 최대 항공사인 대한항공의 연간 유류 소비량은 3300만배럴 수준이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약 372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고 있지만 국제선 항공유는 애초에 면세 품목이어서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없다.

해운업계도 유류비 상승이 부담이다. 현대상선은 올 상반기 유류비로 3247억원을 썼다. 지난해 유류비(5359억원)의 60%를 웃돈다. 이용백 현대상선 대외협력실장은 “올해 유류비가 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라며 “치솟는 유가가 수익성 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형/박상용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