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연구원과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지난달 탈(脫)원전 정책으로 원전산업 인력 수가 크게 줄 것이라는 내용의 ‘원전산업 생태계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외 원전 수출이 없다면 올해 약 3만9000명의 인력이 2030년 2만6700명으로 감소한다는 암울한 전망이 담겼다. 원전 인력 10명 중 3명은 실직자가 된다는 얘기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2기와 영국 원전 2기를 수주한다는 가정 아래서도 원전 인력은 2030년 2만9800명까지 쪼그라든다.

당시 정부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이라고 일축했다. 보고서 내용은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없을 경우를 상정한 시나리오일 뿐이며 산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생태계를 유지할 것이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脫원전 1년 만에 핵심인력 205명 짐 싸…"원전 생태계 다 무너질 판"
원전 두뇌 이탈 현실화

하지만 원전 인력 이탈은 이미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15일 한국전력기술과 한국수력원자력, 한전KPS로부터 제출받은 ‘원전 인력 퇴직자 현황’에 따르면 이들 공기업 3곳에서만 지난해 120명이 사표를 썼다. 2016년 93명에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정년퇴직 등을 제외한 자발적인 퇴직자만 집계한 숫자다. 올해도 8월까지 85명이 일터를 떠났다. 한 달 평균 10.6명으로 지난해(10명)보다 많은 수준이다.

민간에서도 종사자들의 심리적 동요가 상당하다. 원전업체 나라파워의 윤익보 대표는 “민간에선 아직까지 퇴직자가 많지는 않다”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일감이 줄어서 업계를 떠나야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원전 인력의 해외 유출도 가시화하고 있다. 한전기술 등 세 개 공기업의 해외 이직은 2015~2016년엔 1명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9명으로 늘었고 올해도 8월까지 5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아랍에미리트(UAE)로 간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UAE 현지에 있는 한 이직자가 “작년 이후 전직 인원은 20명 정도”라고 전한 것을 고려하면 실제 해외 이직 숫자는 집계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스카우트전에 가세하면…

특히 내년 이후부터는 인력 해외 유출이 크게 늘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예상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신규 원전 5기를 짓는 사업이 남아 있어 아직까지 이직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내년엔 신규 원전의 설계 업무가 거의 끝나기 때문에 인력 엑소더스(대탈출)가 벌어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해외 이직은 주로 UAE 등 중동에 집중되고 있지만 중국에서 인력 스카우트가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윤 대표는 “중국은 한국과 다른 원전 모델을 갖고 있어 아직까지 한국 기술자 수요가 적은 편”이라며 “앞으로 신규 원전 건설이 늘고 새로운 원전 모델 개발을 추진하면 한국 인력에 대한 러브콜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 우려”

문제는 인력 유출은 곧 국부 유출, 산업 생태계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서 교수는 “해외로 이직할 때 한국의 기술을 유출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하지만 해외 업체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해당 인재가 보유한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이전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자랑하는 신형 원전 모델 ‘APR1400’의 경쟁력도 도태될 우려가 크다. APR1400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자와 부품업계 인력이 한국을 떠나면 빈 껍데기만 남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APR1400은 최근 미국 원자력 규제기관으로부터 ‘설계가 안전하다’며 표준설계승인을 받았다. 그만큼 국제적인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정유섭 의원은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면서도 인력 유출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이미 해외 이직이 시작되고 있다”며 “이런 추세면 원전산업의 공급 사슬이 무너지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도 말라죽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