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 암살 파문의 불똥이 국제 정치 및 석유 시장 등으로 튀면서 세계 경제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의 압박에 사우디가 원유 공급 중단 등까지 거론하고 나서자 국제 유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카슈끄지 암살 의혹은 미국 주재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가 지난 2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뒤 살해됐고, 그 배후에는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것이다.

국제유가 불질렀던 사우디…돌연 "내달 산유량 늘릴 것"
사우디 외무부는 14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경제 제재든 정치적 압박이든 어떤 위협이나 음해 시도도 거부한다”며 “어떤 행동(제재)이 이뤄지면 그것보다 더 큰 보복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카슈끄지 암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사우디에) 가혹한 처벌’을 가하겠다고 밝힌 뒤 나온 것이다.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은 사우디에 군사무기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우디와 미국 사이에 갈등 구도가 형성되자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사우디 주가는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런던 선물거래소(ICE)의 브렌트유 12월물은 15일 개장 직후 1.9% 오른 배럴당 81.87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우디 리야드증권거래소(타다울)의 종합주가지수도 14일 한때 7%까지 떨어졌다. 카슈끄지가 지난 2일 실종된 이후 9% 하락했다. CNN방송은 리야드 증시의 올해 주가 상승분이 카슈끄지 실종 이후 한꺼번에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통화한 이튿날인 15일 사우디 검찰에 자체 수사를 지시했다. 로이터통신은 사우디 관리의 말을 인용해 “살만 국왕이 이스탄불에서 이뤄지는 터키와 사우디의 공동 조사에서 나온 정보를 기반으로 카슈끄지 사건을 신속하게 자체 수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고 전했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산업에너지광물부(옛 석유부) 장관은 이날 뉴델리에서 열린 인도에너지포럼에서 “다음달 산유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알팔리 장관은 “사우디는 국제 원유 시장의 충격 흡수자이자 중앙은행 격”이라며 “사우디의 추가 생산 능력과 (공급 안정화) 노력이 없다면 유가는 쉽게 세 자릿수(100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를 포함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과 주요 산유국들은 지난달 말 열린 장관급 회의에선 석유 증산에 부정적이었다. 그런 사우디가 갑작스레 증산 의사를 밝힌 것은 카슈끄지 암살 파문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한 제스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 미국 중간 선거와 대(對)이란 제재를 앞두고 사우디 등 OPEC 회원국이 유가를 의도적으로 끌어올린다며 증산을 거듭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을 1070만 배럴에서 1200만 배럴로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루 130만 배럴은 미국의 경제 제재로 감소할 이란의 석유 수출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살만 국왕과 통화했다며 “그와 만나도록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급파했다”고 밝혔다.

한편 사우디 국부펀드가 23일부터 사흘간 수도 리야드에서 열기로 한 ‘미래투자 이니셔티브(FII)’는 불참자가 속출해 타격을 받고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