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 걸리는 에르메스 파리본점 예약방문 해보니
에르메스는 명품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수작업을 고집해 ‘희소성 마케팅’ 전략으로도 유명하다. 영국 배우 겸 가수 제인 버킨의 이름을 딴 ‘버킨’ 핸드백과 모나코 왕비가 된 미국 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이름을 딴 ‘켈리’ 핸드백은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명품백이다.

그런 에르메스가 지난해 말부터 프랑스 파리 생토노레 본점에서만 가죽가방 구입을 위한 온라인 예약제를 시작했다. 이달 초 파리패션위크 취재차 파리 방문 때 온라인 예약제와 ‘구매대행 알바’를 체험해봤다. 웹사이트에 여권 번호와 이름, 연락처 등의 개인정보를 적고 휴대폰 번호로 본인인증을 한 뒤 예약신청을 했다. 아무나 곧장 예약되진 않는다. 처음 이용하는 사람은 적어도 3~4일 정도 걸린다.

기자는 세 차례 시도 끝에 예약이 성사됐다. “10월1일 오후 2시 생토노레점에서 고객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왔다. 파리 유학생들의 정보공유 사이트를 통해 구매대행 업체를 찾았다. “에르메스 방문 예약을 마쳤는데 가방 구입 알바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카카오톡으로 묻자 “처음이신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하자 “저희 바이어랑 같이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기자는 다음날 구매대행업체 직원 A씨를 만나 매장을 방문했다. 여권과 예약자명을 보여준 뒤 전담 판매원을 배정받았다. A씨는 “버킨 25 또는 30 사이즈에 블랙 가죽이나 뉴트럴 색상에 금장 하드웨어로, 켈리 28사이즈는 어두운 계열 색상에 금장이나 은장 하드웨어로 보고 싶다”고 했다. 또 한국에서 인기가 좋은 가든파티, 에르백도 아무 색이나 보여달라고 했다.

20여 분 뒤 돌아온 판매원은 “버킨 켈리는 아예 없다”며 주황색 박스 2개를 가져왔다. 빨간색 가든파티 30 사이즈와 블랙에 네이비로 포인트를 넣은 에르백 31 사이즈(사진)였다. A씨는 사진을 찍어 구매대행업체 사장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 결국 가방 2개를 모두 구매했다. 가든파티는 2440유로, 에르백은 1800유로. A씨는 현금으로 4240유로를 냈다. 거액의 현금이었지만 카운터 직원은 늘상 보는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셌다.

매장 밖으로 나온 A씨는 알바비라며 100유로를 건넸다. “에르메스는 예약조차 어렵기 때문에 알바비가 쏠쏠한 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방 가격과 희소성, 개수 등에 따라 알바비는 50~500유로까지 지급한다고 한다. 구매대행업체 사장은 “앞으로 파리 올 땐 미리 일정을 알려주면 바이어와 시간을 맞춰놓겠다”고 말했다. 한 파리 유학생은 “1000만원을 주고 파리에서 산 에르메스 가방은 한국에서 2000만원에 팔 수 있기 때문에 알바를 쓰는 구매대행 업체가 많다”고 전했다.

파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