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더페이스샵, 루이비통에 5000만원 배상" 판결
국내 화장품 브랜드 더페이스샵이 프랑스 명품업체 루이비통에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명품백 디자인을 차용해서 내놓은 ‘패러디’ 상품이 “루이비통의 명품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3부(박원규 부장판사)는 명품업체 루이비통이 국내 화장품 업체 더페이스샵을 상대로 낸 부정경쟁행위 금지 청구 소송에서 “디자인을 차용한 제품의 판매·전시를 중단하고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루이비통이 문제삼은 제품은 더페이스샵이 2016년 미국 가방 브랜드 ‘마이아더백’(My Other Bag)과 협업해서 내놓은 화장품이다. 마이아더백의 천가방 디자인을 화장품 용기에 사용한 것이다. 마이아더백의 천가방은 한쪽 면에 루이비통, 사넬 등 명품 가방을 일러스트 형태로 그려넣고 다른 면에는 ‘My Other Bag’을 프린트한 제품이다. 이는 “지금 내가 사용하는 가방은 저가 제품이지만 다른 의미에서의 고급 가방을 갖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명품백을 선호하는 소비 행태를 비꼬는 패러디 상품인 셈이다.

루이비통은 앞서 미국에서 마이아더백을 상대로도 상표권을 침해당했다고 소송을 냈지만 미국 법원은 “이 디자인은 패러디에 해당한다”며 기각한 바 있다. 더페이스샵은 미국 법원의 판단을 근거로 “자사 제품에 들어간 마이아더백의 디자인 역시 패러디”라고 주장했지만 국내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마이아더백이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아닌 데다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일반적 영어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수요자들에게 ‘My Other Bag’이라는 문구가 특별한 논평적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면에 일러스트와 문자가 각각 프린트된 마이아더백 가방과 달리 더페이스샵 제품에는 같은 면에 표시돼 있어 희화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며 “루이비통과 유사한 디자인을 반복적으로 표시했을 뿐 피고만의 창작적 요소가 가미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재판부는 더페이스샵이 제품을 광고하면서 ‘루이비통’이라는 상호를 직접 인용했고,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고용하는 등 고가 제품에 못지않은 품질을 표현하려 한 점 등을 근거로 “루이비통의 ‘명품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더페이스샵이 루이비통의 디자인을 사용함으로써 디자인의 식별력을 훼손했다고 보고 손해배상액을 5000만원으로 산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더페이스샵이 디자인을 사용해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브랜드를 혼동하게 했다는 루이비통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