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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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산업은 혁신과 답보의 기로에 서 있다. 핀테크(금융기술)를 중심으로 혁신과 도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반면 15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와 금리 상승에 따른 부실화로 뒷걸음질할 우려를 함께 안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당국은 서민·취약계층 보호 차원에서 금융회사들의 금리 인상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에 반해 중금리 대출 확대, 서민금융 지원 강화 등 어려운 과제를 떠넘기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각종 대출규제는 금융회사의 영업환경까지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도약하는 금융산업] 비바람에 굴하지 말고 쑥쑥 커라, 한국 금융
이 와중에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기존 금융회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아직 자산 규모는 작지만 누가 대주주가 되고, 또 얼마만큼 자본을 불리느냐에 따라 규모는 급속도로 커질 수 있어서다.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늘 위기라고 생각하고 영업에 임했지만 최근처럼 앞날을 내다보기 힘든 경우는 없었다”며 “어디서 수익원을 찾아야 할지, 어디서 비용을 아껴야 할지, 어디서 혁신 포인트를 발굴해야 할지부터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 금융회사들이 마냥 제자리 뛰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우선 은행은 빠르게 변화 중이다. ‘디지털 금융’이라는 플랫폼을 바탕으로 핵심 벤처기업 발굴에 몰두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50개 점포를 디지털 서식 기반의 종이 없는 창구로 운영하고 있고 올해 말까지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지난 8월 신분증 스캔, 손바닥 정맥 바이오인증, 화상상담 등을 통해 무인점포 수준의 업무 처리 능력을 갖춘 지능형 자동화기기인 ‘스마트 텔러 머신(STM)’을 도입했다. KEB하나은행은 2020년까지 3년간 총 15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중소벤처 투자, 신성장 4차산업, 창업·일자리 창출 등에 골고루 지원할 계획이다.

인수합병(M&A)도 활발하다. DGB금융그룹은 지난달 금융위원회로부터 하이투자증권 자회사 편입 및 현대선물 손자회사 편입을 승인받았다. DGB금융그룹은 하이투자증권 인수로 지방금융 최초로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 전 부문을 아우르는 사업라인을 완성했다.

제3의 인터넷은행 등장도 예고돼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인터넷은행 특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다음날인 지난달 21일 “내년 4~5월께 제3 또는 제4 인터넷전문은행의 추가 인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험사들은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을 대비해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고 자살보험금과 즉시연금 미지급 등으로 추락한 이미지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고객 중심 경영활동 확대와 소비자 권익 보호 강화를 위해 외부 전문가만으로 구성된 ‘소비자권익보호위원회’를 지난 4월 발족했다. 한화생명은 우수한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해 4월 10억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등 IFRS17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슈어테크(보험+테크) 시대에 대한 대비도 활발하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정부로부터 사물인터넷(IoT) 활성화 기반 조성을 위한 블록체인 시범사업자로 선정돼 ‘보험금 자동청구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소비자의 결제 방식에서 고객 편의를 증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삼성카드는 5월 카드를 신청하면 즉시 발급받아 이용할 수 있는 ‘실시간 디지털 완성형’ 카드 발급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카드 신청 후 5분 만에 사용할 수 있다. 신한카드는 새로운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인 ‘신한페이판(PayFAN)’을 지난 1일 공개했다. 신한페이판은 결제·금융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디지털 솔루션을 기반으로 이용자가 자주 결제하는 분야에는 할인 쿠폰을 준다.

증권업계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증권업계는 상반기에 반기 기준 순이익 기록을 11년 만에 갈아치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권사 55곳의 상반기 순이익은 2조697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1조9177억원)보다 40.7% 증가했다. 하반기 들어서도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 상위권 주요 증권사들이 연초 세웠던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는 등 순항을 이어가고 있어 연간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치를 넘어설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자산운용업계는 공모펀드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된 가운데 최소 가입금액이 1억원, 혹은 3억원 이상인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한국형 헤지펀드 설정액은 23조원을 넘어섰다. 운용전략도 다양해졌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40대 젊은 오너들이 이끄는 한국형 헤지펀드들은 벤처정신과 첨단 투자기법으로 무장해 자산운용업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