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준생(퇴직준비생)들이 ‘퇴사학교’에서 강연을 듣고 있다. /퇴사학교  제공
퇴준생(퇴직준비생)들이 ‘퇴사학교’에서 강연을 듣고 있다. /퇴사학교 제공
국회의원 비서관인 김재원 씨(32)에게 의원실은 네 번째 직장이다. S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잡은 첫 직장은 대기업 P사였다. 1년간 근무하고 사표를 냈다. 사장 표창까지 받을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이후 컨설팅 회사에서 6개월, 신문사 기자로 2년간 근무한 뒤 국회로 직장을 옮겼다. 직장 상사들은 늘 그의 결정을 말렸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더 성장할 기회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그는 미국 유학을 통해 다섯 번째 직업을 준비하고 있다.

달라지는 ‘업(業)’의 의미

밀레니얼 세대가 ‘평생직장’과 결별하고 있다. 대신 이들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맨다. 그 방향성은 ‘직업의 귀천’을 중시하는 기성세대가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대기업을 퇴사한 뒤 가게를 열어 ‘장사꾼’이 되고, 정년이 보장된 평생직장을 버리고 비정규직 프리랜서가 된다. ‘업(業)’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처럼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청소년기를 보낸 밀레니얼은 부모의 실직과 파산을 겪으며 평생직장을 믿지 않게 됐다.

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12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7.7%에 달한다.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의 ‘재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거나, 큰 시련을 겪지 않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자아실현’이 가능하지 않은 회사라고 판단해서다. 무작정 사직서를 던지지 않고 ‘퇴사학교’를 찾아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히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단순 노동을 하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외국계 가구회사에서 근무하다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권미소 씨(29)는 “식당에서 받는 시급으로도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며 “회사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견디지 못해 한국을 떠났는데 긴 인생에서 큰 자산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테헤란로 위워크 역삼역 2호점에 입주한 스타트업 직원 및 프리랜서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링크트인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첫 직장에 입사한 뒤 10년간 약 네 차례 이직한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비정규직인 프리랜서의 길을 걷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서울 테헤란로 위워크 역삼역 2호점에 입주한 스타트업 직원 및 프리랜서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링크트인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첫 직장에 입사한 뒤 10년간 약 네 차례 이직한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비정규직인 프리랜서의 길을 걷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변화하는 일자리 지형

밀레니얼 세대의 직업관이 변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링크트인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은 첫 직장에 입사한 뒤 10년간 약 네 차례 이직한다. 평균 두 차례 이직하는 X세대의 두 배다. 비슷한 직군으로 옮겨가는 이직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산업으로의 이동이 증가하는 게 특징이다.

프리랜서 근로자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 프리랜서 매칭 플랫폼 업워크는 10년 뒤엔 프리랜서가 정규직 근로자 수를 넘어서면서 미국 노동시장의 주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미 미국 밀레니얼의 47%가 프리랜서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도 프리랜서 비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프리랜서코리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1인 창업 및 프리랜서 근로자 비율은 9%다. 장기적인 취업난과 맞물려 취업을 포기하고 저숙련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리터’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훨씬 더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이런 노동시장의 변화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이 달라진 데다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고용 형태도 다양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장기적으로 정규직 고용 형태의 월급쟁이는 크게 줄어들고 자기 전문성을 브랜드로 지닌 프리랜서가 늘어날 것”이라며 “기업 조직은 개인이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이자 ‘협력자’로 성격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 기반 플랫폼 기업들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디자이너, 개발자, 포토그래퍼, 번역가 등 각 분야의 재능있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숨고(숨은 고수)’ ‘크몽’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직업과 직장의 경계를 허문다. 박현호 크몽 대표는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투잡’ ‘스리잡’ 시대가 도래하면서 향후 재능거래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현재 누적 거래액이 300억원 수준인데, 300억원 규모의 수입을 창출하는 새로운 차원의 일자리가 생겼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M세대가 기겁(?)하는 부장님 말씀

▶ 사생활은 지켜주세요
“어제 남자친구랑 뭐 했니?”
“휴가는 누구랑 가니?”
“SNS 보니까 잘 놀러 다니던데.”
“저녁에 약속 있나? 술이나 한잔할까?”

☞ “젊은 직원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돈 있다. 친구도 있다. 없는 건 당신이 뺏고 있는 시간뿐이다.” (문유석 판사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中)

▶ ‘직장 = 나’가 아닙니다
“휴일에 미안한데.”
“주인 의식을 갖고 일해야지.”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패기가 없나?”

▶ 우리는 ‘남’입니다
“내 아들딸 같아서 하는 말인데.”
“우리끼리는 괜찮지?”

▶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내가 니 나이 때는 말이야.”
“요즘 애들은 왜 그런가?”

▶ 구체적인 질문·지시가 필요합니다
“말 안 해도 알지?”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자유롭게 말해보게.”

▶ ‘유체이탈’ 화법은 싫습니다
“요즘은 노래방 가자고 하면 꼰대라며? 나도 꼰대인가?”
“이것도 ‘미투’인가? 하하.”

▶ (번외편)절대 피해야 할 ‘꼰대’의 육하원칙
Who(내가 누군 줄 알아?)·What(니가 뭘 안다고)·Where(어딜 감히)·When(우리 때는 말이야)·How(어떻게 나한테)·Why(내가 그걸 왜?)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