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연구개발(R&D) 부문을 떼어내 별도 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강행 할 조짐이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반대했지만, 한국GM은 이사회를 열어 법인 분리 안건을 통과시켰다. 자동차업계 일각에서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GM '脫한국' 시동 걸었나…R&D법인 분리 강행
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 4일 이사회를 열어 디자인센터와 기술연구소 등의 부서를 묶어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산은이 추천해 임명된 이사들은 분리 안건에 반대했지만 표결을 통해 안건이 통과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이사회는 GM 측 이사 7명, 산은 측 이사 3명 등 10명으로 구성됐다. 한국GM은 오는 19일 주주총회를 열어 이 안건을 최종 처리할 계획이다.

한국GM이 내세운 법인 분리의 이유는 한국 R&D센터의 위상 강화다. 한국GM의 R&D 부문으로 남아 있으면 부평 및 창원공장에서 생산하는 경차와 소형차를 개발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분리돼 GM 글로벌 연구센터의 일원이 되면 모든 차종을 개발할 기회가 생긴다는 게 한국GM 측 설명이다.

산은과 노조는 R&D 부문 분리에 반대하고 있다. 법인을 쪼갠 뒤 R&D법인만 살리고 기존 생산법인의 문을 닫기 위한 수순일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서다.

GM '脫한국' 시동 걸었나…R&D법인 분리 강행
산업은행은 지난달 한국GM이 디자인 및 연구개발(R&D) 부문 분리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소집한 주주총회를 막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도 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한국GM 신설법인 설립은 제너럴모터스(GM)와 산은이 체결한 계약서에 들어 있지 않은 사안이고, 잠재적 위험도 있다”고 가처분 신청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산은 관계자는 “GM이 R&D 부문 분리에 대한 구체적인 의도와 계획을 확실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며 “GM 측 의도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아 분리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쟁력이 있는 디자인 및 R&D 분야를 따로 떼어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기존 생산 부문은 고사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이유에서다. 기존 생산 부문이 GM 본사의 하청 생산기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가 결국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놨다.

한국GM 측은 노조와 산은의 주장은 억측이라고 반발한다. 한국에 최소 10년간 머물기로 산은과 합의했고 10년간 36억달러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상황에서 철수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지금처럼 한국GM 내 R&D 부문으로 있으면 한국에서 생산하는 경차 및 소형차 개발에만 매달려야 하는데, 글로벌 GM 산하 R&D 센터가 되면 개발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R&D 부문을 육성하기 위한 방안일 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GM 본사가 한국 사업을 철수시킬 생각이 있었다면 지난 7월 한국GM에 추가로 50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한국GM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은과 GM이 당초 합의한 내용에 없던 사업부 분리 작업이 갑자기 이뤄지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며 “GM이 경쟁력 있는 부문만 살리고 그렇지 않은 부문은 과감히 정리하는 경영 전략을 쓰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한국 공장을 폐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도병욱/박신영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