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이상규 인터파크 대표(52·사진)는 “예술 하는 분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염색하지 않은 은발의 긴 곱슬머리, 사람 좋아 보이는 호탕한 웃음, 중후한 풍모, 편안한 복장 등은 전쟁터 같은 비즈니스 세상과 거리를 둔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삶은 외모와 완전히 달랐다. 대학 땐 운동권에 들어가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싸웠다. 인터넷이 막 보급될 무렵에는 안정된 대기업 직장을 박차고 나와 e커머스(전자상거래)사업을 시작했다. 국내 1호 인터넷쇼핑몰 인터파크였다. 국내 최초의 온라인 서점, 온라인 티켓 판매사업도 모두 그가 주도해 시장을 창출했다. e커머스업계 선구자로 불리는 이 대표를 지난달 추석 연휴 직전에 만났다. 장소는 그의 단골집인 서울 삼성동에 있는 세꼬시 전문점 ‘해초록사랑’이었다.

◆데이콤 사내벤처로 사업가의 길 들어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현 경제학부)에 1985년 입학했다. 입학식 날 고교 선배가 찾아왔다. “입학을 축하한다. 좋은 선배들을 소개해주겠다”며 신림동 고시촌 술집으로 데려갔다. 그날 운동권 언더서클(비밀서클)에 가입했다. 당시 같이 ‘운동하던’ 김기식 전 국회의원과는 지금도 막역한 사이다. 부인인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도 서클에서 만났다. 느티나무도서관은 2000년 경기 용인시 수지에 처음 문을 연 사립 공공도서관이다. 이 대표는 졸업 후 공군 장교로 군 복무 중 박 관장과 결혼했다.

이 대표는 군 제대 후 현대증권에 취업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몇 개월 만에 PC통신 천리안을 운영하던 정보기술(IT)기업 데이콤으로 이직했다. 그는 “일반 기업에 관심이 없었는데, 먹고 살아야 하니 취직했다”고 말했다. 데이콤 입사 뒤 전략기획본부에 배치됐다. 사회 초년생으로 경험하기 힘든 일을 많이 맡았다. 사옥 부지를 찾고 멀티미디어 관련 신사업을 하는 등 최고경영자(CEO) 최측근에서 경영 감각을 익혔다. 이 대표는 “기업이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이때 확 깨달았다”고 했다.

본격적인 창업 얘기를 할 때쯤 “이 타이밍에 한잔하자”며 그가 술잔을 들었다.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이 몇 순배 돌았다. 그사이 두툼하게 썬 ‘세꼬시’가 접시 가득 담겨 나왔다. “이 집은 세꼬시를 잘하는데 도다리 새끼 등이 좋습니다.” 그가 먹는 대로 배춧잎에 미역줄기와 톳을 가득 얹고 세꼬시 한 점을 된장에 찍어 올렸다. 입안 가득 바다의 싱그러운 향기가 퍼졌다.

데이콤에서 ‘에이스’ 평가를 받던 그가 인터파크를 시작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이기형 현 인터파크홀딩스 회장이 그의 옆자리였다. “알고 보니 친형의 같은 과(서울대 물리천문학부 82학번) 친구더라고요. 함께 사내벤처를 구상하며 서로의 생각을 잘 알게 됐습니다.”

인터파크는 1995년 11월 사내벤처 형태인 소사장제로 출발했다. 이 회장은 이 대표에게 “같이하자”고 했다. “인터넷 시대가 오면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필요한 것을 사지 않겠느냐”고 꼬드겼다. 이듬해 6월 국내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인 인터파크를 선보였다. 인터파크는 인터넷을 통해 즐거움을 준다는 의미로 ‘인터넷’과 ‘테마파크’에서 따왔다. 주변에선 만류했지만 그는 인터파크에 모든 것을 걸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냈다.

◆“일대일 대응이 경쟁력 원천”

창업은 시작부터 큰 시련을 겪었다. 1997년 10월 여러 기업에서 증자 약속을 받고 법인을 설립했다. 한 달 후 외환위기가 터졌다. 모기업 데이콤은 구조조정에 나섰다. 인터파크도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그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이 회장과 그는 “데이콤이 투자한 7억원을 3년간 나눠 갚을 테니 지분의 3분의 2를 넘기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간신히 사업을 이어갔다. 이후 살아남기 위해 돈 되는 것은 다했다. 대기업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해 주는 게 가장 돈이 됐다. 온라인 쇼핑사업은 키울 여력이 떨어졌다. 같은 시기 이베이, 아마존 등 미국 온라인 쇼핑몰은 급성장했다.

당시 하루 매출이 30만원에 그친 날도 많았다. ‘내가 혼자 지하철에 가서 팔아도 30만원은 벌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배송 사고도 빈번했다. 주문을 받고 배송한 사과가 ‘실종’돼 추적했더니 창고에서 썩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선 다른 게 필요했다. 물건을 못 보고 산다는 ‘단점’을 보완해야 했다. 누구나 다 아는 표준화 상품을 팔기로 했다. 책이었다. 1997년 서울문고와 손잡고 책을 팔기 시작했다. 최초의 온라인 서점이었다. 공연 티켓과 레저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이듬해 1월 공연, 영화, 스포츠 경기 등을 예매하는 티켓파크를 열었다. 1999년부터 여행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1999년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ADSL)이 깔리기 시작했다. 일정액만 내면 무한정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졌다. 접속 속도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이 덕분에 웹 서핑이 널리 퍼지고 인터파크 사용자도 급격히 늘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지난 20년간 e커머스시장은 80조원 규모로 커졌다. 시장 포화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 대표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기회는 아직도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여전히 역동적인 시장”이라고도 했다.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지만,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20년간 크게 달라진 것은 판매하는 상품 수가 늘었다는 정도입니다. 배송이 더 좋아졌지만, 이건 국내 택배회사가 전국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구성한 게 주된 이유입니다. 온라인 쇼핑 회사가 잘한 것은 별 게 없어요.”

앞으론 다를 것이란 게 그의 판단이다. 인공지능(AI)의 발전 때문이다. 그는 “누가 먼저 소비자 ‘일대일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하느냐가 사업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파크는 일대일 서비스를 위해 채팅 로봇인 톡집사를 2016년 도입했다. 톡집사는 AI 기술을 적용한 챗봇 서비스다. 빅데이터에 기반을 뒀다. 쇼핑할 때 궁금한 점이 있으면 AI와 사람이 함께 응대한다. 휴대폰으로 모바일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현재 절반 정도인 톡집사의 대답 비중도 더 높여나갈 계획이다. 그는 “인터파크에서만 파는 상품이 3000만 종류가 넘는데 쇼핑 화면은 더 작아졌다”며 “제한된 디스플레이에서 수많은 상품을 ‘잘’ 보여주는 게 관건이 됐다”고 강조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상규 인터파크 대표 "국내 첫 온라인 쇼핑몰 설립 주도…인터넷은행 사업에도 '도전장'"
◆제3인터넷은행 재도전

이 대표는 요즘 제3인터넷은행 설립을 위한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의결권 기준 지분 보유 한도를 종전 4%에서 34%로 확대하는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내년 2~3월께 인터넷은행 예비 인가 신청을 낼 예정이다. 이 대표는 과거 인터넷은행에 도전했다가 탈락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번엔 인터넷은행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충분히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신용평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중소기업과 개인에게 대출을 잘 해주지 않는 기존 은행의 한계를 보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온라인 쇼핑 사업만큼 은행과 가까운 곳도 없다”고 설명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가 있거나 재무제표가 튼튼해야 하는데, 우리가 거래하는 셀러(판매자) 90%는 은행 거래를 못 해요. 우리는 이 90%에 대출이 가능합니다. 20여 년간 사업하면서 이들과 거래한 결제 내역이 있어 정확한 신용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정갈한 갈치구이가 밑반찬으로 나왔다. 살점이 탄탄해 씹을 때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함께 나온 미역국은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이 대표는 서민금융에 대한 비전도 밝혔다. 그는 “은행 거래를 못 하는 서민을 대상으로 제2금융권보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기존 은행권이 주목하지 않는 저(低)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에 방점을 찍겠다는 것이다. 또 “결제 수수료를 아예 없애고 핀테크(금융기술) 생태계 중심의 완전히 새로운 은행을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인터파크는…

인터파크는 1996년 6월1일 사이트를 열며 국내 최초로 인터넷 쇼핑몰을 개척한 기업이다. 인터파크는 ‘인터넷 테마파크’의 줄임말로 종합쇼핑몰, 오픈마켓, 온라인 서점, 티켓 예매 서비스, 온라인 여행사업 등 인터넷 공간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최근 모바일 거래 비중이 50%를 넘어서자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가 e커머스 시장의 승부처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챗봇 톡집사 서비스 등 AI 기술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1966년 경북 상주 출생
△1985년 대구 달성고 졸업
△1990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1993년 데이콤 입사
△1997년 데이콤인터파크 사업총괄이사
△1999년 인터파크 부사장
△2005년 인터파크 대표이사
△2011년 아이마켓코리아 대표이사
△2013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16년~ 인터파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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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대표의 단골집 해초록사랑
해초류 쌈이 일품인 자연산 생선회 전문점


서울 삼성동에 있는 자연산 생선회 전문점이다. 각종 해초류를 쌈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삼성중앙역 6번 출구에서 400m가량 걷다 보면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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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민락동에 있는 해초록이 본점이다. 서울 대치동에도 분점 해초록안방이 있다. 해초록을 운영하는 임갑희 대표는 요리 연구가 황혜성 선생에게 궁중요리를 배우고, 부경대 생선회전문가과정도 이수한 요리 전문가다. 회를 잘 알기 위해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도 공부했다. 남해에서 난 자연산 재료만을 쓴다. 그래서 이름도 초록빛 바다를 뜻하는 해초록이다. 적당하게 익은 김치가 유명하다. 김치를 따로 ‘해파란’이라는 브랜드로 출시하기도 했다.

해초록사랑의 메뉴는 정식류로 이뤄져 있다. 점심시간엔 미니정식(2만7000원), 회정식(3만7000원), 세꼬시정식(4만4000원)이 마련돼 있다. 저녁에 즐길 수 있는 사랑정식(6만원)과 해초록정식(8만원), 스페셜정식(10만원)도 있다. 회식과 모임의 경우 1인당 가격을 원하는 대로 맞춰서 제공한다.

안효주/안재광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