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무역전쟁 심화와 달러화 강세 등의 영향으로 신흥국 시장에서 최대 1000억달러의 자금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아르헨티나 터키 등에서 나타난 통화위기가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개월 연속 하락해 세계 제조업 경기가 냉각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라가르드 총재는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한 연설에서 “그동안 잠재적 위험으로 존재하던 요인들이 현실화하기 시작했다”며 “위기가 확산되면 신흥국에서 자본 유출이 일어나 최대 1000억달러가 빠져나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몇 년간 수천억달러가 신흥국으로 유입됐지만 이제 정반대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무역전쟁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이 무너지면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가 파괴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각국 정부와 민간 부문의 부채도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IMF가 집계한 세계 부채총액은 182조달러로 2007년보다 60% 증가했다.

무역전쟁에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신흥국 통화위기 등이 겹치면서 미국을 제외한 세계 제조업 경기에도 점차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JP모간과 IHS마킷이 조사한 9월 글로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2.2로 전달보다 0.4포인트 하락했다. 경기 확장과 수축을 가르는 기준인 50은 넘었지만 5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2016년 11월(52.0) 이후 22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PMI는 신규 주문, 생산, 재고 등에 관한 설문을 통해 체감경기를 파악하는 지표다.

필 스미스 IHS마킷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관련 불확실성, 터키 통화위기 등이 악재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국가별로는 유럽과 중국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중국의 9월 PMI는 50.0으로 지난해 5월 이후 1년4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신규 수출 주문이 2016년 2월 이후 최저를 기록해 무역전쟁 여파가 여실히 드러났다. 독일은 2년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프랑스는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과 일본의 PMI는 소폭 상승했지만, 세부 지표 중 수출 관련 지수는 악화돼 무역전쟁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의 PMI는 8월 54.7에서 9월 55.6으로 상승했다. 미국 경제는 지난 2분기 성장률이 4.2%(전기 대비 연율)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도 호조를 지속한 것으로 관측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세계 경제 기상도가 악화되고 있다”며 IMF의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을 내비쳤다. IMF는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9%로 예상했으며 오는 9일 수정 전망치를 내놓을 예정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각국은 무역 분쟁을 완화하고 해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