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잇따라 계열사 매각 및 지분 조정안을 내놓고 있다. 계열사를 통째로 팔거나 일부 사업부를 쪼개서 매각하고, 총수 일가가 보유한 특정 회사의 지분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자발적인 사업 재편으로 보이지만, 속내는 다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한층 강화하면서 새롭게 규제 대상에 포함된 계열사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SK그룹과 LG그룹은 이미 계열사 및 사업부 매각에 착수했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도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경제계에서는 기업들이 정부에 등 떠밀리듯 계열사 매각 및 지분 조정 작업에 나섰다가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계열사 매각 나선 SK·LGSK그룹은 36년 만에 해운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SK해운 지분 80~90%를 사모펀드(PEF)인 한앤컴퍼니에 파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K해운이 업황 부진과 차입금 부담 때문에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주된 이유지만, 결정타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공정위가 마련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은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계열사와 그 계열사가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자회사를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새로 포함시켰다. 기존(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 상장사 및 20% 이상 비상장사)보다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SK해운은 지주회사인 SK(주)가 지분 57.22%를 가진 비상장사다. SK(주)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3.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SK해운은 규제 대상에 포함돼 내부 거래 비중을 줄여야 한다. SK해운의 지난해 내부 거래 비중은 34%였다.최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지난달 자신이 갖고 있던 SK디앤디 지분 24%(약 1700억원) 전량을 한앤컴퍼니에 매각했다. SK디앤디도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LG그룹은 지난달 19일 비상장 계열사 서브원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사업부를 떼어내 별도 법인을 설립한 뒤 사모펀드 등에 지분을 팔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서브원은 지주사인 (주)LG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 등 총수 일가는 (주)LG 지분을 46.68% 갖고 있다. 지난해 매출의 약 60%가 내부 거래에서 나왔다. 서브원도 새 규제 대상 기업이다.총수 일가가 보유한 특정 계열사 지분을 정리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지난 8월 정보기술(IT) 서비스 계열사인 코오롱베니트 지분 전량(49%)을 코오롱에 현물 출자했다. 코오롱은 이 회장에게 신주 56만여 주를 발행했다. LS그룹도 총수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가온전선 지분(37.62%)을 LS전선에 매각했다.한화는 지난해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주식을 전량 보유하고 있던 한화S&C를 에이치솔루션(존속)과 한화S&C(신설)로 물적 분할했다. 신설 회사인 한화S&C 지분 44.6%를 스틱인베스트먼트 등에 넘겼고, 지난달엔 한화S&C를 한화시스템에 합병시켜 사익 편취 논란을 해소했다.◆삼성 등도 계열사 매각 나서나삼성그룹에서는 단체급식 업체인 삼성웰스토리가 대표적인 신규 규제 대상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삼성이 웰스토리를 제3자에게 매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의 압박 때문에 알토란같이 키워온 사업을 내줘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준비하는 현대차그룹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꼬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지주사 체제를 도입한 그룹들은 다급해졌다. 대부분 지주회사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고, 이런 지주사가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자회사도 앞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한 지주사 관계자는 “정부가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을 높이라고 해서 거기에 따랐을 뿐인데, 그 결과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게 생겼다”며 “다양한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도병욱/고재연 기자 dodo@hankyung.com
현대중공업이 4년 만에 해양플랜트(원유 및 가스 생산·시추 설비) 수주를 눈앞에 뒀다. 올 들어 이 회사의 선박 수주 실적은 5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해양플랜트와 선박 발주가 늘어나면서 조선업이 5년여간 이어진 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미국 석유개발업체 엘로그가 발주한 5억달러(약 5555억원) 규모의 부유식 원유 생산설비(FPU) 수주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멕시코만 일대에서 원유개발사업인 킹스랜딩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엘로그는 이달 현대중공업과 FPU 건조 계약을 맺을 계획이다. 2014년 11월 아랍에미리트(UAE) 나스르 해양플랜트 건조 계약을 따낸 이후 47개월 만이다.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현대중공업그룹 세 조선사의 올해 수주액은 104억달러(약 11조5544억원)로 2013년(139억달러) 후 가장 많다.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한 대기업 계열사 대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한숨부터 쉬었다. 강화될 규제에 따르자니 부작용이 뻔히 예상되고, 따르지 않자니 그룹 총수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기업들은 초비상이다. 갑작스럽게 특정 회사의 오너 지분을 내다팔거나 회사 자체를 정리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수많은 인력이 관련 작업에 뛰어들어야 하고, 시한에 쫓기다 보면 지분을 헐값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계열사의 총수 일가 지분율을 낮추는 과정에서 경영권을 위협받을 가능성도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총수 일가가 계열사 지분을 대거 내다파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 주가가 크게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2013년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도입된 이후 한 회사가 오너 보유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1주일 만에 주가가 20만원 선에서 13만원 수준으로 하락한 사례도 있다.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공정위는 “규제 대상 기업이 내부거래를 하더라도 부당거래가 아니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부당거래 여부를 따지는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고 경제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정위가 부당한 거래라고 지목하면 대주주 사익편취와 무관한 내부거래도 부당거래로 확정될 수 있다”며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모든 내부거래가 부당거래로 확정될 우려가 있다고 전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기준은 모호하지만 처벌규정은 강하다.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하면 기업 총수가 징역형(3년 이하)에 처해질 수도 있다.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도입한 이후 한진, 하이트진로, 효성, LS 등의 총수 일가를 검찰에 고발했다.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옥죌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계열사 간 거래는 대부분 효율성과 상품 품질 유지 등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정상적 거래로 사익편취와 무관한 사례가 많다”며 “정부가 내부거래 자체를 죄악시하면 기업의 경쟁력이 악화되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정거래법 개정을 강하게 밀어붙이자 기업인들이 제대로 반박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하소연도 나온다.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