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복 미루시스템즈 대표가 전자투개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기만 기자
정진복 미루시스템즈 대표가 전자투개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기만 기자
아프리카 국가 중 인구(1억 명)가 비교적 많은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은 오는 12월23일 대선·총선·지방선거 등 3대 선거를 동시에 치른다. 한국 기업인 미루시스템즈가 개발한 전자투개표 시스템이 처음 도입된다.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17년째 집권하고 있는 이 나라는 800여 개 부족에 출마자 수만 2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가 불안정해 선거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진복 미루시스템즈 대표는 “3개의 선거를 한 번에 치르고 출마자가 많은 DR콩고는 투표용지가 50장에 달하는 지역도 있었다”며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자가 많아 사진이 첨부된 전자투개표 시스템을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유일 전자투개표 시스템 수출

미루시스템즈는 전자투개표 시스템 수출 시장에서 유럽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이라크 키르기스스탄 등이 미루시스템즈가 개발한 전자투개표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진복 대표는 “선거 제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어 맞춤형 투개표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며 “하드웨어 생산을 외주 제작에 의존하는 업체보다 경쟁력이 높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유럽 미국 같은 선진국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면 이들 나라가 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고 했다.

DR콩고는 앞서 벨기에 기업의 전자투표 시스템으로 시범 사업을 했다. 하지만 정확성과 신뢰성 문제로 미루시스템즈와 1931억원 규모의 계약을 새로 맺었다. DR콩고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50여 명은 지난 6월부터 3개월간 한국에서 머물며 전자투개표 시스템 개발을 도왔다. 이번에 도입된 시스템은 유권자 한 명당 한 장의 투표용지로 선거를 모두 치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전국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터치스크린투표기(TBS)에 투표용지를 넣고 후보자를 선택하면 투표용지에 자동으로 기입돼 출력된다. 후보자 명단이 기재된 투표용지에 유권자가 일일이 도장을 찍는 기존 방식보다 무효표가 나올 가능성이 작다. 정 대표는 “터치스크린투표기 10만여 대가 DR콩고로 수출돼 12월 선거에 활용된다”며 “직원 20여 명도 현지를 방문해 선거 진행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전자투개표 시스템은 조작 불가능”

정 대표는 전자투개표 시스템이 조작될 수 있다는 의심은 오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자투개표 시스템을 도입해도 종이 투표용지도 함께 출력하게 된다”며 “터치스크린투표기와 중앙 서버, 종이 투표용지에 세 번 기록되는 만큼 선거의 신뢰성이 더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선거 결과에 불복이 있을 때만 종이 투표용지를 재검토하기에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루시스템즈는 국회 내에 설치된 전자투개표 시스템을 2005년부터 공급하고 있다. 공직 선거에서 사용하는 사전투표용지 발급기와 개표 시 투표용지 분류기도 이 회사 제품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각 정당의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도 이 회사가 제조한 전자투개표 시스템을 사용한다.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지난해에는 109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DR콩고 수출 등에 힘입어 매출이 2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했다.

정 대표는 2000년대 초반 국내 최초로 수표촬영기(수납장표처리기)를 국산화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이후 스캐너 기술을 투표 용지에도 적용하면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정 대표는 “한국은 세계적인 IT(정보기술) 강국인 데다 국민 스스로 민주화를 이뤄낸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전자투개표 시스템을 세계로 수출해 국격을 높이고 ‘선거 한류’를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