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 이후 10년 가까이 회복세를 지속해왔다. 하지만 최근 △미·중 통상전쟁 격화 △미국의 금리 인상 지속 △가파른 국제유가 상승 등 3대 악재가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먹구름이 잔뜩 끼는 모습이다. 미·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데다 원유를 모두 수입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말 그대로 비상이 걸렸다. 안 그래도 성장률 저하로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격화되는 미·중 통상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 24일 2000억달러(약 223조3000억원)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10%)를 발효했다. 중국도 같은 날 600억달러어치의 미국 제품에 5~10%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설마 했던 주요 2개국(G2) 간 전면적인 ‘관세 전쟁’이 불을 뿜게 된 것이다.

중국은 고위급 무역협상도 거부했다. 이달 말께로 예상되던 류허 경제부총리의 미국 워싱턴DC 방문을 취소했고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무역 행태를 비판하는 백서도 발행했다.

미국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중국의 시장 왜곡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276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3단계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미·중 갈등은 군사 분야로도 옮겨붙었다. 미국이 24일 대만에 F-16 전투기 부품 등 3억3000만달러 상당의 무기를 판매하기로 하자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을 위반했고 중국의 주권과 안보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맹비난했다. 미국은 이달 들어 러시아 무기를 구매한 중국 군부를 제재했고, 중국은 주중 미국대사와 무관을 불러 강력히 항의했으며 미·중 군사 교류도 중단했다. 정기적으로 허용했던 미 해군 강습상륙함 와스프(배수량 2만7000t)의 홍콩 기항도 거부했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자 기업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산제이 메로트라 미국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1일 미국의 관세 부과로 수익성에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BMW는 무역 갈등이 수요를 왜곡시키고 있다며 영업이익률을 당초 목표였던 8~10%보다 낮은 7%로 전망했다. 미국과 캐나다 간 무역 갈등도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이 캐나다 없이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전쟁·금리인상·유가 상승… '저질 체력' 한국에 엎친 데 덮친 격
美 기준금리 인상… 신흥국에 불똥 튀나

상승세인 미국 금리에 고삐가 풀렸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25일 2.4bp(1bp=0.01%포인트) 상승한 연 3.102%로 마감됐다. 지난 5월18일 이후 가장 높다. 장중 연 3.113%까지 치솟았다. 2년물 수익률은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연 2.843%까지 올랐다.

이날 이틀 일정으로 시작된 미 중앙은행(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확실시되고 있어서다. 금리를 25bp 올리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2~2.25%가 된다.

미 중앙은행은 오는 12월 회의에서도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 CNBC가 46명의 이코노미스트 등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96%가 12월에도 또 0.25%포인트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
제롬 파월 Fed 의장
Fed의 금리 인상은 또다시 신흥국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루이스 카푸토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뉴욕에서 아르헨티나와 국제통화기금(IMF) 간 구제금융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갑자기 사표를 냈다. 취임한 지 3개월 만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개인사정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월스트리트 출신인 카푸토 총재가 암울한 현실에 사표를 던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리 인상은 미 증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이날 “약세장은 경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국내 경기 탓에 연 1.5%인 기준금리를 인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과의 기준금리 차이가 곧 0.7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6일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금리 격차가 0.25%포인트 확대되면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가 15조원(국내총생산 대비 0.9%)까지 감소할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세계 시장 움직임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 불안도 증폭될 수밖에 없다.

연말 100달러說 나도는 국제유가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회원국이 세계를 착취하고 있다”고 대놓고 비난했지만 유가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25일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배럴당 67센트(0.8%) 상승한 81.87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2014년 11월10일 후 최고가다. 미국의 서부텍사스원유(WTI)도 배럴당 20센트(0.3%) 오른 72.27달러로 마감했다.

오는 11월 이란의 원유 수출에 대한 미국 제재를 앞두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5일 이란에 대한 원유 제재가 재개될 것이고 이후 더 많은 제재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산유국들은 지난 주말 회의에서 당장 증산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통상전쟁 등으로 수요가 불확실한 만큼 좀 더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HSBC는 지난주 “글로벌 시장이 대규모 공급 중단에 매우 취약하다”며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로 치솟는 것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11월 미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OPEC에 대한 압박 약화 △달러의 약세 전환 △겨울철 수요 증가 등의 요인도 연말께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갈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