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세 2기분 고지서가 각 가정에 날아들었다. 작년보다 세금이 많이 늘었다는 볼멘소리를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지난 1년간 집값이 많이 오른 가운데 과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부자증세' 주장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세금 부담이 늘어난 이들이 들으면 속이 쓰릴 얘기지만, 경제학자들은 의외로 재산세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자유주의 경제학자였다. 그런 그도 재산세에 대해선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3년 내놓은 ‘부동산 과세의 잠재 수익과 이행 과제’ 보고서에서 “경제학자들은 부동산에 매기는 세금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공정성이 높다고 본다”고 밝혔다. 증세를 해야 한다면 재산세, 그중에서도 부동산에 대한 세금부터 올리라는 정책 권고였다.

불어난 세금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재산세 인상을 지지하는 여론도 작지 않다. 재산세는 기본적으로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 물리는 세금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 증세’ 논리다.

그러나 ‘덜 나쁜 세금’도 지나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6년 ‘주택가격과 부동산 과세’ 보고서에서 “재산세를 늘려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경제활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으로 상쇄된다”고 지적했다.

재산세 등 부동산 보유세와 상속·증여세, 취득세 등을 합한 ‘재산 관련세’가 한국의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11.6%로 OECD 회원국 중 영국(12.6%) 캐나다(11.9%)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보유세는 낮지만 거래세는 높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한국에선 곧잘 ‘복지 천국’으로 인식된다. 복지 혜택이 큰 만큼 한국보다 세금을 훨씬 많이 걷는다. 하지만 이 나라들의 세수에서 재산 관련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스웨덴이 2.4%, 덴마크가 4.0%에 그친다.

한국은 경제규모 대비 부동산 가격이 높아 부동산에 더 무거운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조세 항목별 비중을 놓고 보면 부동산 관련 세금이 적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조세 구조에서 선진국보다 비중이 낮은 항목은 개인 소득세다. 2016년 기준 14.4%로 자료가 집계된 OECD 회원 28개국 중 23위였다. 미국(36.9%) 독일(26.6%) 덴마크(53.0%) 등에 비해 크게 낮았다.

소득세 비중이 낮은 것이 혹시 고소득자들이 세금을 적게 내서는 아닐까 의심해봄 직하다.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소득 상위 1%는 전체 소득세의 30% 이상을 낸다. 상위 10%의 소득세 비중은 70%가 넘는다.

고소득층 세금 부담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작지 않다. 미국은 지난해 전체 소득세 중 상위 1%가 38.0%, 상위 10%가 70.2%를 냈다. 영국은 상위 1%가 27.7%, 상위 10%가 59.2%의 소득세를 부담했다.

한국의 소득세 세수가 적은 것은 중간 소득층으로 가면서 실효세율이 급격히 낮아지고 근로소득자의 절반 가까이가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 대상인 탓이 크다. 2016년 기준 한국의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43.6%로 OECD 평균(16%)을 크게 웃돌았다.

자산 보유 계층과 고소득층에 세금이 집중되는 경향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주택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고, 1주택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도 올리기로 했다. 지난해엔 과세표준 1억5000만원, 올해는 3억원 초과 구간의 소득세율이 인상됐다.

'부자증세' 주장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재산과 소득이 많은 계층이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조세 정의에 부합한다. 그러나 한국의 조세 구조를 살펴보면 재산과 소득을 많이 가진 사람은 이미 상당한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OECD는 한국 정부에 면세자 비율을 줄이라고 계속 권고하고 있다. 중저소득층에 세금을 부과하라는 얘기다. 소수 부유층만 대상으로 한 증세로는 충분한 세수 증대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세금을 늘리기에 앞서 받아들여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