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의 벤처인큐베이터 ‘차이훠 메이커스페이스’ 모습. 선전=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중국 선전의 벤처인큐베이터 ‘차이훠 메이커스페이스’ 모습. 선전=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혁신 성장의 대표 정책으로 정부가 수백억원을 투자해 전국에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 65개를 선정, 창업지원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장비 및 인력을 갖춘 공간이다. 창작활동을 통해 창의적 혁신역량을 축적하는 ‘교육과 체험’의 마당, 전문 창작활동과 제조 창업을 연계하는 역할이 기대되는 곳이다.

사실 비슷한 개념의 창업 지원 공간이 전 정부 시절에도 있었다. ‘무한상상실’과 ‘아이디어팩토리’란 이름으로 몇 년 동안 운영됐지만 거의 실패했다. 설립 초기에는 3D(3차원)프린팅이 신기해서 이용자가 꽤 있었으나 하루 평균 이용자가 10명이 안 될 정도로 유명무실해졌다. 애초의 목적처럼 혁신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기보다는 3D프린터 설치 등 하드웨어 위주의 인테리어가 잘된 전시 행정의 공간이 됐기 때문이다.

앞선 경험을 거울삼아 ‘메이커 스페이스’는 혁신 성장의 생태계로 잘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이곳이 생태계가 되려면 단순한 공작실 개념의 공간으로만 존재하면 안 된다. 메이커 스페이스의 앞뒤에 연계되는 단계와 함께 혁신 방법과 콘텐츠 개발, 확산에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아무래도 만드는 데(how to make)에 초점을 두게 되는데, 그 전 단계에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what to make)에, 특히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것을 만드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메이커 스페이스를 통해 결과물 즉 시제품이 나오면 다음 단계인 이 시제품을 기반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만드느냐(how to make business) 단계로 연계시켜야 한다. 그래야 메이커 스페이스가 신생 창업 지원만이 아니라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많은 중소기업의 혁신과 경쟁력이 있는 신사업 발굴 지원에 도움이 돼 지역경제 발전의 거점이 될 수 있다.

메이커 스페이스 혁신 공간으로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한 창의적 혁신을 위해 다음의 방법이 유용할 것이다. 메이커 스페이스의 앞 단계에는 시장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협업에 장점이 큰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 딜레마 해소 및 아이디어 도출에 유용한 트리즈(TRIZ), 신사업 발굴의 블루오션 전략을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메이커 스페이스의 뒤의 단계에는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를 작성한 뒤에 제품을 가볍고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해 받은 피드백을 참조해서 개선, 발전시켜가는 린 스타트업의 사업화 전개 방법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관련 혁신 방법과 콘텐츠 개발은 사업의 이름만 다를 뿐 계속돼 왔다. 그런데 개발된 콘텐츠를 보급, 활용, 업데이트하는 노력이 적어 관련 기관의 장롱 속에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와 국가 출연기관, 지역의 대학 등에서 다양한 혁신 방법의 실무 적용 방법을 더 연구하고, 혁신 전문가를 육성해 중소기업의 역량 강화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가 국가 지정 혁신 연구센터를 주요 대학에 만들어서 지역의 중소기업 혁신을 지원하는 것을 참조할 만하다. 중소기업 혁신의 성공 사례가 많아지고 확산이 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중견기업으로 빨리 성장해 가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중소기업이 혁신, 성장 의지를 꺾는 요인을 제거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대기업, 국가기관과 중소기업 간 거래의 불공정이다. 불공정 거래의 유형은 불공정 계약, 사람 빼가기, 기술 탈취, 단가 후려치기, 지급 연체와 갑질 행태 등이다. 이는 중소기업의 이익률이 낮고 직원 급여 수준이 대기업의 절반으로 줄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수한 인재와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한국 대기업이 선진국의 중소기업을 수천억원에 인수합병(M&A)했다는 기사가 종종 나온다. 기술력과 시장 크기의 차이도 있겠지만,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을 제값으로 사는 경우는 적다. 쉽게 기술을 탈취할 수 있고 훗날, 보통 3년 정도 뒤에 불공정 거래로 최종 확정이 돼도 그 불이익이 적기 때문이다. 특히 핵심인력을 스카우트하면 되는데 굳이 기술과 기업을 비싸게 살 경제적인 이유가 없다. 이런 과정을 학습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뒤에서는 불평하면서도 기존의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공정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다. 중소기업들이 안으로 곪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들이 시장에서 기업과 기술이 합쳐지고 융합돼 발전하는 경우는 적어지고, 그동안의 많은 투자와 성과가 꽃피지 못하고 시드는 경우가 많아진다.

중기·대기업 공정거래 정착돼야

어떻게 중소기업의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공정 거래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첫째는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지식재산권이나 기술 탈취에 관한 피해 배상 소송의 결과를 보는 데 보통 3년이 걸린다. 배상까지 가는 사례도 적지만 그 배상액도 평균 5000만원 정도로 적다. 그러다 보니 법적 소송으로 불공정 거래를 단죄하는 중간에 그 중소기업은 지쳐서 쓰러진다. 또한 피해자만 불공정 거래를 증명하지 않고 가해자에게도 일정 부분 증명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수년 전까지 큰 이슈였던 택시 합승 문제가 사라진 것이 좋은 예다. 합승 행위가 단속되면 택시 요금의 30배의 징벌적 손해 배상금을 내는 법이 적용된 뒤 택시기사들은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합승하지 않게 됐다.

'메이커 스페이스'를 中企 혁신성장 거점으로
둘째, 을의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의 법률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부분을 보완해줘야 한다. 예를 들면, 불공정 계약 체결 자체를 줄이기 위해서 국가에서 유형별 몇 가지의 표준 계약서를 공시해 준다. 표준화된 부동산 계약서처럼 기업 간 거래의 특약 사항만 더 추가하게 한다. 또 불공정 거래가 발생한 경우 법조계의 법률적 자문을 강화하고 중소기업 구제와 민원 조사관인 ‘옴부즈만’의 지원 활동을 많이 늘려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셋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퇴직한 직원들이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에서 가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로비스트가 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

중소기업의 혁신 역량 강화와 건강한 기업 생태계 조성에 관심과 자원을 더 투자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아진다.

이경원 <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