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서 LG디스플레이가 개발한 ‘휘어지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주)LG 제공
구광모 LG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서 LG디스플레이가 개발한 ‘휘어지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주)LG 제공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현장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6월 말 회장에 취임한 뒤 70여 일 만이다. 구 회장이 선택한 데뷔전 무대는 그룹의 ‘연구개발(R&D) 심장’인 LG사이언스파크다. “40세 젊은 총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래 먹거리”라는 메시지를 임직원들에게 보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이번 현장 점검을 계기로 구 회장이 재계 4위 그룹 총수로서의 행보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부터 챙긴다”

13일 LG그룹에 따르면 구 회장은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R&D 클러스터인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했다. 4조원을 투입해 지난 4월 문을 연 LG사이언스파크에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등 8개 계열사 연구인력 1만7000여 명이 몸담고 있다. 구 회장의 현장 방문에 안승권 LG사이언스파크 사장, 박일평 LG전자 사장, 유진녕 LG화학 사장, 강인병 LG디스플레이 부사장 등 주요 계열사 최고기술책임자(CTO)들이 총출동한 배경이다.

구 회장은 LG디스플레이가 개발하고 있는 ‘휘어지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제품과 LG전자의 ‘레이저 헤드램프’ 등 전장부품들을 살펴본 뒤 동행한 CTO들과 R&D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LG 관계자는 “구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가상·증강현실(ARVR) 기술을 우선적으로 육성해 달라고 주문했다”며 “남들보다 빨리 미래 트렌드를 포착해 기술 개발로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나가자고 당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글로벌 선도기업과의 기술협력 및 국내외 유망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발굴에도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 LG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LG 테크놀로지 벤처스’를 설립해 자율주행과 AI, 로봇 분야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다.

구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선대 회장께서 LG사이언스파크에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셨듯이 나 또한 우선 순위를 높게 두고 챙겨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故) 구본무 회장은 LG사이언스파크를 각별히 챙겼다. 지난해 9월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시찰한 곳이기도 하다.

경영 보폭 넓힐 듯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대외 활동의 첫발을 뗀 만큼 경영 보폭을 차츰 넓혀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6월29일 회장에 취임한 뒤 별다른 대외 활동 없이 그룹 경영 현안 파악에 집중했다. 재계 관계자는 “70일 넘게 잠행한 구 회장이 임직원들 앞에 섰다는 것은 그동안 그룹 현안 등에 대한 ‘스터디’를 어느 정도 끝냈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재계 4위 그룹을 이끄는 총수에 걸맞은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오는 18∼20일 열리는 평양 남북한 정상회담에 동행해 경제외교 무대 데뷔전도 치를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이달 말부터 내년 사업 계획 수립과 사장단 및 임원 인사, 조직개편 등 핵심 경영 현안에 매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G그룹은 11월 초 계열사별 사업보고회를 열어 올해 실적(추정치)을 점검한 뒤 이를 토대로 내년 사업 계획을 확정하고,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한다.

구 회장이 ‘뉴 LG’의 키워드를 내놓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40세 총수가 이끄는 ‘젊은 LG’로 새로 태어난 만큼 미래, 도전, 기술 등 ‘구광모호(號)’의 핵심 가치를 담은 새로운 구호를 통해 조직 역량을 결집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