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된다면야" 끊임없는 기술유출 사건…정부차원 대응필요

국내 유명 발광다이오드(LED) 업체 관계자 A 씨는 최근 업계 모임에 참석했다가 온몸에 힘이 빠지는 허탈감을 느꼈다.
LED 기술에 양배추 종자까지… 도넘은 '해외 유출' 비상
자신이 속한 업체가 장장 7년간 5천600억원을 쏟아부으며 개발한 자동차의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실내등 등에 쓰이는 LED 소자 제조 기술을 대만의 한 경쟁업체에서 확보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A 씨는 곧바로 문제의 대만 업체와 관련된 정보를 수소문했고 자신과 함께 근무하다가 퇴사한 전 동료인 김모(50) 씨가 이 업체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가 12일 전모를 밝힌 LED 기술유출 사건의 수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경찰은 A 씨 업체의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김 씨 등 3명을 구속했다.

김 씨 등은 이 기술을 빼돌려 대만 업체로 이직해 고액 연봉과 주거비 지원 등 각종 호사를 누렸지만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됐다.

이처럼 우리 기술을 해외에 팔아넘겨 국내 업체의 매출 손실은 물론 국가경쟁력 하락까지 불러오는 기술유출 사건이 잊을만하면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검찰이 중국 업체에서 근무하는 중국인을 기술유출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외국인으로는 첫 사례였다.

문제의 중국인은 삼성디스플레이의 협력업체 연구원에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관련 기술을 갖고 자신이 속한 업체로 이직하면 기존 연봉의 3배가량인 2억 원을 주겠다고 꼬드겨 이 기술을 받아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행히 첩보를 입수한 수사기관이 사전에 이들의 계획을 막았지만, 이 기술은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할 정도로 유출될 경우 피해기업은 물론 국가 산업에도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인 것으로 알려졌다.
LED 기술에 양배추 종자까지… 도넘은 '해외 유출' 비상
최근 해외 업체의 국내 기술유출 시도는 먹거리 시장에까지 뻗쳤다.

중국의 한 종묘업체 대표인 중국인 이모(47) 씨는 지난해 7월 국내 한 종묘업체 소속 연구소장이던 B 씨에게 "대가를 지급하겠다"고 해 B 씨에게서 이 연구소가 개발한 신품종 양배추의 원종을 받아냈다.

B 씨가 속한 종묘업체는 부계와 모계로 이뤄진 원종을 개발한 뒤 이들을 교배해서 산출된 새로운 씨앗(종자)을 판매하는 업체로 원종은 제조업으로 치면 상품의 설계도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에 검찰은 양배추 원종이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 이 씨를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이 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 같은 기술유출 사건은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처리한 건수만 2015년 16건, 2016년 21건, 지난해 24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검찰, 국가정보원 등 다른 수사기관에서도 비슷한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기술유출 예방을 위한 정부 차원의 부서 개설과 각 기업의 전문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창무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는 정보보호과, 국토교통부에는 항공보안과가 있는데 산업기술과 관련해서는 정부 부처에 별다른 부서가 없다"며 "정부가 산업기술을 보호할 과(課)라도 하나 만들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견기업 이하에는 산업기술 보호 업무를 담당할 부서가 없어 총무부나 감사부서가 총괄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들도 회사 중요 기술의 유출을 예방하고 유출됐을 때에는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학장은 "신기술 개발까지는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이 들어가지만, 이를 훔치는 데에는 이만큼의 비용이 들지 않아 기술유출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며 "국내 기업과 근로자들의 산업 보안 의식이 낮은 것도 한 원인으로 교육, 홍보 등을 통한 보안 의식 강화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