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예고한 2000억달러(약 220조원) 규모 중국 수입품에 대한 최고 25% 관세 부과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시스코 등 정보기술(IT) 기업을 포함한 미국 산업계는 6일(현지시간) 관세 부과를 철회해달라고 촉구했지만, 미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만간 실력 행사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2000억달러어치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즉각 6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기겠다고 맞서고 있다.
2000억弗 '관세 전면전' 카운트다운… 트럼프 사인만 남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를 위한 사전 절차로 3주 가량 이어온 공청회를 이날 마무리했다. 최종 판단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월6일 1차로 340억달러어치, 8월23일 2차로 16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각각 25%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이 동일 금액과 동일 세율로 보복하자 3차로 2000억달러어치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세율은 10~2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 중국은 지난해 미국 수출액(5050억달러)의 거의 절반에 고율 관세를 맞게 된다. CNN은 “2000억달러 관세 부과는 중국에 큰 고통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도 ‘보복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가오펑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가하는 조치들은 이성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며 “중국은 반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중 무역전쟁에서 승기는 미국 쪽에 있었다. 하지만 ‘미·중 3차 관세전쟁’이 현실화되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대중(對中) 1·2차 관세 부과 때만 해도 대부분 ‘B2B(기업 간 거래)’ 품목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3차 관세 부과 대상에는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제품인 소비재가 다수 포함돼 있다. 미국 소비자가 무역전쟁의 피해를 보게 된다는 의미다.

도이체방크는 앞서 이뤄진 50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 관세 부과 땐 소비재가 37억달러에 불과했지만 2000억달러 관세 부과 리스트엔 780억달러어치의 소비재가 포함돼 있다고 분석했다. 수건부터 자전거, 야구 글러브, 디지털 카메라 등 거의 모든 소비재가 관세부과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이날 “미국 역시 고통을 느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배경이다.

중국은 연간 대미(對美) 수입액이 1300억달러가량이어서 미국과 계속 동일한 금액으로 관세전쟁을 벌일 순 없다. 미국의 2000억달러 관세 부과에 맞서 600억달러어치 미국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기고 나면 중국의 관세보복 카드는 거의 소진된다. 하지만 인허가 지연과 불매운동 등 비관세 장벽을 동원해 미국과의 통상전쟁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시스코, 휴렛팩커드, 델컴퓨터, 퍼네트웍스 등 미국 주요 IT 기업 4곳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관세 부과를 막아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통신장비에 관세를 부과하면 소비자가격이 오르고 투자를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주 공청회에서도 기업 및 기업단체 소속 350여 명이 “중국 수입품에 대한 새로운 관세 부과는 비용을 증가시키고 혁신을 저해하며 물가만 오르게 할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 일본 엔화를 사고 한국 원화를 팔라고 권고했다. 미국이 200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안전자산인 엔화는 강세를 보이는 반면 무역 비중이 높은 한국 원화는 약세를 보일 것이란 이유에서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은 수출 중심 국가인 데다 미국과 중국 모두에 의존도가 높아 타격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주용석/베이징=강동균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