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산업의 뿌리인 부품회사들이 ‘실적 쇼크’에 빠졌다. 부품사 10곳 중 9곳이 2년 전보다 나빠진 성적표를 받았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판매실적 악화가 부품사로 전이된 결과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다. 자칫 자동차산업 생태계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감 줄고 인건비는 늘고… 대형 車부품사도 줄줄이 '적자 쇼크'
◆대형 자동차 부품사도 ‘휘청’

4일 한국경제신문이 상장 부품사 82곳(12월 결산법인 기준)의 상반기 실적을 조사한 결과, 적자를 낸 곳은 총 25개사인 것으로 집계됐다. 자동차산업의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인 2016년엔 적자 부품 기업이 10곳에 불과했다. 작년에 17곳으로 늘어난 뒤 올해는 증가세가 더 가팔라졌다. 2년 새 적자 기업이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다.

영업이익이 2년 전에 비해 줄어든 곳도 전체의 85.4%(70곳)에 달했다. 이 가운데 18개 기업은 아예 적자로 돌아섰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위아를 비롯해 덕양산업, 동국실업, 서진오토모티브, 세종공업, 에코플라스틱 등 연매출 1조원이 넘는 회사들도 줄줄이 2년 만에 영업손실을 냈다. 화신과 평화산업 등 6개사는 적자폭이 커졌다. 영업이익을 냈지만 그 규모가 2년 전과 비교해 반토막 난 회사도 29곳이나 됐다.

서연이화(-79.3%)와 성우하이텍(-50.7%), 에스엘(-73.4%), 평화정공(-72.2%), 화승R&A(-51.3%) 등 ‘부품업계의 대기업’으로 불리는 회사들의 영업이익도 급감했다. 반면 2016년 상반기 적자를 내다가 올 상반기 흑자로 돌아선 기업은 4개밖에 없었다. 적자 규모를 줄이거나 흑자폭을 키운 회사도 8개에 불과했다.

상반기 기준 1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을 낸 회사는 2016년 31개에서 올해 16개로 줄었다. 적자 규모가 10억원 이상인 회사는 8개에서 21개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매출 상황도 비슷했다. 82개사 가운데 67.1%에 달하는 55개사의 매출이 줄었다.

◆소형 업체는 ‘고사(枯死) 직전’

부품사들이 경영난에 빠지게 된 주된 이유는 국내 완성차 업체의 판매 실적 악화다.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과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내수 시장에서도 수입차 비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사드 보복’과 올 상반기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는 가뜩이나 위태롭던 부품업계를 휘청이게 한 결정타였다.

완성차업계의 어려움은 부품사 일감 부족으로 이어졌다. 일부 완성차 업체는 부품사에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해외 부품사의 한국 진출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장 가동률이 50% 아래로 떨어지고, 매출이 30% 넘게 줄어드는 부품사가 속출했다. 중국에 공장을 세운 부품사의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현대차의 중국 합작사인 베이징자동차가 납품 단가를 반강제적으로 10%가량 낮추면서 수익성이 급속하게 나빠졌다.

하반기 이후가 더 문제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완성차 업체의 판매량이 급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등의 변수가 더해졌다. 한 부품사 대표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인력을 더 뽑아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며 “이대로라면 연구개발(R&D) 속도가 예전보다 크게 떨어져 글로벌 경쟁업체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자동차 및 부품산업 생태계가 뿌리부터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나마 상장된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사정이 낫다. 군소 업체들은 이미 고사 직전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품사의 경영 악화가 계속되면 신규시설 및 R&D 투자가 어려워지고, 이는 결국 완성차 업체의 제품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