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텅 빈 보험사 객장 > 경기가 나빠지면서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은 줄고 해약하는 사람은 늘고 있다. 한 대형 생명보험사의 객장이 영업 중임에도 텅 비어 있다. 한경DB
< 텅 빈 보험사 객장 > 경기가 나빠지면서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은 줄고 해약하는 사람은 늘고 있다. 한 대형 생명보험사의 객장이 영업 중임에도 텅 비어 있다. 한경DB
보험산업은 도·소매업과 함께 내수경기 침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종 중 하나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소액의 보장성보험을 많이 판매하는 손해보험업에 비해 저축성보험과 고액의 장기보험 판매 비중이 높은 생명보험업이 경기에 더욱 민감하다. 생보사의 초회보험료(가입 후 처음 내는 보험료)가 급감하고, 해지환급금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건 ‘보험에 덜 가입하고, 더 많이 해지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보험 지표는 한국 경제가 불황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2815만8676건에 달했던 보험 신계약 건수는 지난해 1397만8125건으로 절반 이상 급감했다.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2년간 신계약 건수는 800만 건 이상 급감했다. 당시 금융위기에 따른 가계사정 악화로 보험 가입을 꺼리는 가구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보험업계는 최근 독립법인대리점(GA)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보험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보험 신계약 건수가 매년 줄어드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한 보험사 임원은 “현장 영업점에선 최근 영업 사정이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연상하게 한다는 얘기가 적지 않게 들린다”고 말했다.

생보사의 초회보험료도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2011년 6조3591억원에서 올 상반기 5조2692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2010년대 중반께 생보사를 중심으로 저축성보험 판매 열풍이 불면서 한때 15조원(반기 기준)까지 육박했던 초회보험료가 절반 이상 급감했다.

이뿐만 아니라 보험 해지를 통해 받는 생보사 환급금은 올 상반기 12조9187억원에 달했다. 이런 추세가 연말까지 계속되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 해지환급금(22조1086억원)을 훨씬 웃돌 전망이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엔 15조5827억원이었던 해지환급금이 이듬해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뒤 17조7885억원으로 2조원 이상 불어났다. 해지환급금은 가계 사정이 나빠지면 급증하는 추세를 보인다. 최근 기획재정부와 금융소비자연맹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0% 이상이 경제적 이유로 보험을 중도 해지한다고 답했다.
초회보험료 2년새 36% 급감… '불황형' 약관대출 두배 이상 늘어
30~50대 가구 직격탄 맞나

전형적인 ‘불황형 대출’로 불리는 보험약관대출은 올 상반기 사상 처음으로 45조원(대출채권 잔액 기준)을 돌파했다. 올 상반기 약관대출 증가액은 2조899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5402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16년 상반기 증가액 1조2312억원과 비교하면 135.5% 증가했다.

약관대출은 금융권에 대출 정보가 공유되지 않고 대출심사도 까다롭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약관대출에 평균 연 7~10%의 비교적 높은 금리를 적용해 시중은행 대출을 이용할 때보다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 전문가들은 시중은행을 통한 추가 대출이 막힌 일부 생계형 자영업자가 제2금융권으로 몰린 것으로 분석했다.

보험상품을 담보로 급전을 빌려주는 약관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가계 사정이 그만큼 나빠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보험상품에 가입했거나 가입하는 연령대가 통상 30~50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인 20대는 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없고, 60대 이상은 비싼 보험료 탓에 장기보험에 가입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임원은 “보험 가입이 줄고 해지가 늘어났다는 건 한국 사회의 허리층인 30~50대의 가계 사정이 나빠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