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은 IFA 2018에서 자사 ‘아이 리프레시’ 세탁기에 장착된 모터의 구동 모형을 전시했다. /고재연 기자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은 IFA 2018에서 자사 ‘아이 리프레시’ 세탁기에 장착된 모터의 구동 모형을 전시했다. /고재연 기자
지난달 31일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 ‘IFA 2018’이 열린 독일 베를린의 대형 전시장 ‘메세 베를린’.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 전시장을 찾은 조성진 LG전자 부회장과 임원들은 세탁기 앞에 설치된 모터 모형의 구동 원리를 유심히 지켜봤다. ‘세탁기 장인’으로 불리는 조 부회장이 중국 업체의 세탁기 모터를 꼼꼼하게 살펴본 이유는 이들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겉만 번지르르한 신제품 홍보에 주력했던 중국 업체들이 이제는 모터 구동 모형을 전시하는 등 ‘기술’에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며 “일본 제품을 따라 하며 급성장한 한국의 과거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묘하게 낯익은 中 제품들

중국 유비테크로보틱스의 알파 1E 로봇
중국 유비테크로보틱스의 알파 1E 로봇
중국 가전 업체들은 다른 회사 제품을 모방한 ‘미투 제품’을 주로 선보였다. 메이디는 인공지능(AI) 기능이 적용된 에어컨 에어엑스(airX)를 공개했다. 에어컨 상단에 설치된 카메라가 사람들의 동작을 인식해 운동할 때는 센 바람을, 잠이 들었을 때는 약한 바람을 보내준다. 외출할 때도 따로 에어컨을 끄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밖으로 나갔다는 것을 인식한 에어컨이 저절로 꺼지기 때문이다. 카메라와 다양한 센서를 활용해 사용자의 생활 환경을 학습한다는 점에서 LG전자 ‘휘센 씽큐 에어컨’과 비슷했다.

메이디가 선보인 ‘퀵 워시’ 세탁기는 드럼 세탁기의 드럼통 부분과 드럼 바닥 부분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도는 ‘듀얼 드라이브’ 방식을 적용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유럽에 내놓은 ‘퀵 드라이브’와 닮았다. 퀵 드라이브는 드럼 세탁기의 상하 낙차 방식과 전자동 세탁기의 회전판 방식을 접목해 세탁 시간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하이얼이 선보인 ‘듀오 드라이’ 세탁기는 드럼 세탁기 두 대를 결합한 제품이다. 디자인 측면에서 LG전자 ‘트롬 트윈워시’를 떠올리게 했다.

메이디 ‘에어X’ 에어컨.
메이디 ‘에어X’ 에어컨.
하이얼, 하이센스 등 다른 중국 가전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냉장고를 전시했다.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적용해 출시한 ‘패밀리허브’를 모방한 것. 남아 있는 재료의 유통기간을 확인하고 부족한 식재료를 바로 주문할 수 있도록 하는 ‘푸드 매니지먼트’ 기능도 비슷했다. 냉장고 안에 카메라를 설치해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내부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일본 뒤쫓던 한국 보는 듯”

선두인 한국 업체를 따라잡기 위한 중국 TV 업체들의 공세도 매서웠다. 일찌감치 8K TV를 내놨던 대만 훙하이그룹에 인수된 샤프는 ‘2세대’ 8K TV를 선보였다. 중국 TCL은 8K QLED TV를 공개하며 삼성 8K QLED TV 출시에 맞불을 놨다.

중국 TCL이 공개한 8K QLED TV
중국 TCL이 공개한 8K QLED TV
중국 메이디, 하이얼, 하이센스, TCL 등 주요 가전 업체는 ‘스마트홈’ 시대에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아마존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제품은 물론 모든 가전제품이 AI로 연결돼 음성명령으로 편리하게 작동되는 모습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전시관을 꾸몄다. 구글 어시스턴트를 적용한 TCL TV는 리모컨에 장착된 마이크를 통해 명령을 인식했다. LG전자의 ‘매직 리모컨’ 사용 방식과 같았다.

국내 가전업계는 중국 가전업체들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모터, 컴프레서 등 아날로그 기술을 토대로 하는 가전산업은 ‘축적의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마트폰의 경우 한국의 턱밑까지 추격한 중국이 가전 사업에서는 유독 한국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그럼에도 거대한 시장을 ‘테스트 베드’로 갖고 있는 중국이 언제 ‘시간의 격차’를 따라잡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매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로봇, 드론 등의 분야에서도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스마트폰 부문에서는 이미 ‘추격자’에서 삼성전자 등 글로벌업체와 ‘경쟁자’가 된 듯했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발 빠르게 화웨이 매장을 찾았다. 리처드 유 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IFA 2018에서 ‘모바일 AI의 궁극적인 힘’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7나노 공정 기반의 신형 모바일 AI 칩 ‘기린 980’을 공개했다. 그는 “탁월한 AI 기능과 최첨단 성능을 겸비한 새로운 시스템온칩(SoC)을 설계했다”며 “완전히 새로운 CPU, GPU 및 듀얼 NPU(신경망 반도체)를 갖춘 기린 980은 최고의 엔진”이라고 주장했다. 기린 980은 다음달 화웨이가 선보일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20’에 탑재될 전망이다.

베를린=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