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냉장고가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식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 조리법을 추천한다.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된 오븐은 조리법에 맞춰 요리 코스를 자동으로 선택하고 예열까지 한 상태로 ‘대기’한다. 먹고 싶은 요리가 있을 경우 AI 냉장고가 부족한 식재료를 확인해 미리 주문도 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31일 개막한 독일 가전전시회 ‘IFA 2018’에서 선보인 AI 가전의 모습이다. 사용자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보인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제품에 들어가는 AI를 구축하는 과정에선 다른 길을 간다. 삼성전자는 AI 플랫폼 ‘빅스비’ 단독 체제로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LG전자는 자체 AI 플랫폼 ‘딥씽큐’뿐만 아니라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 등과 자유로이 협업하는 ‘열린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빅스비'로 AI 주도권 노리는 삼성

김현석 사장 "음성인식 데이터 누가 갖느냐가 승패 가를 것"

AI 플랫폼은 강력한 두뇌
어떤 제품 내놓는가보다
똑똑한 두뇌 있느냐가 중요


엇갈리는 삼성·LG의 AI 전략
삼성전자는 당분간 자체 인공지능(AI) 플랫폼 ‘빅스비’를 강화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아직은 타사 플랫폼과 비교해 인식률(말을 알아듣는 수준)이 낮지만 학습량을 늘리고 데이터를 축적해 더 강력한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삼성 기기에 구글, 아마존 등의 AI 플랫폼을 탑재할 경우 데이터를 축적할 수 없어 기술 개발에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5억 대 팔리는 ‘기기’가 경쟁력

김현석 삼성전자 CE부문장(사장·사진)은 3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음성 인식 기술력과 (그렇게 쌓은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이 AI 전쟁의 승패를 가를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글과 아마존, 애플 모두 각자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검색’에, 아마존 알렉사는 ‘쇼핑’에 특화돼 있다. 삼성의 무기는 매년 전 세계에 5억 대씩 팔려나가는 ‘기기’다. 김 사장은 “경쟁사가 AI 스피커를 잇달아 출시하는 것도 돈이 돼서가 아니라 음성을 인식할 ‘기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반면 삼성은 스마트폰, TV, 가전까지 연간 5억 대의 기기를 이미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빅스비 단독 체제를 구축한다고 해서 구글, 아마존 등과 협업할 가능성을 아예 닫아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 플랫폼 간의 ‘협력 모델’이 탄생할 것으로 봤다. 문제는 시점과 방식이다. 김 사장은 “협력 모델은 단순히 삼성 제품에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힘이 없으면 구글에 종속되겠지만 우리가 힘이 있다면 빅스비를 통해 구글이 가진 서비스를 모두 활용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홀로서기’가 가능한 구조를 구축해야 향후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당분간 빅스비 단독 체제를 유지하며 AI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밀레니얼 세대 공략 가속화

AI 기술을 확보하면 뻗어나갈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김 사장은 로봇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태아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성장하는 것이 두뇌”라며 “두뇌(견고한 AI 플랫폼)가 성장해야 팔·다리(로봇)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견고한 AI 플랫폼에 하드웨어를 붙이면 그게 로봇이 되고, 스마트홈이 된다는 의미다. 그는 이어 “어떤 제품을 내놓는가보다 똑똑한 두뇌를 갖췄느냐가 더 중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I 기술을 통해 공략하고자 하는 주된 소비자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다. 김 사장은 “이미 삼성전자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의 70%가 밀레니얼 세대”라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는 것이 삼성에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생활가전(CE) 부문에 ‘라이프스타일 랩’을 신설했다. 소비심리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디자인, 마케팅 전문가들이 폭넓은 시각으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연구한다.

AI '열린 생태계' 구축하는 LG

조성진 부회장 "로봇·자율車와 AI 결합… 새로운 미래 열려"

검색은 구글 어시스턴트
쇼핑은 아마존 알렉사 연계
스마트TV 독자 OS도 개방


엇갈리는 삼성·LG의 AI 전략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사진)이 31일 ‘IFA 2018’ 기조연설에서 제시한 미래 모습은 이렇다. AI와 결합한 제품들이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평소 TV에서 무엇을 주의 깊게 봤는지를 토대로 필요한 제품을 미리 주문한다. 퇴근길에 주문한 물건을 찾아올 수 있도록 차량에 메시지도 보낸다. 조 부회장은 “이런 미래 모습에 ‘로봇’과 ‘자율주행차’를 더해 보라”며 “집과 사무실, 차량이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키워드 ‘진화·연결·개방’

박일평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사장)는 AI 브랜드 ‘씽큐’의 3가지 강점으로 △사용자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쓸수록 좋아지는 ‘맞춤형 진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연결해 모든 생활 영역을 통합하는 ‘폭넓은 연결’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열린 생태계’를 꼽았다.

박 사장은 “AI는 사용자와의 교류를 통해 꾸준히 진화해야 한다”며 “LG전자는 진화하고 학습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지의 대학,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등과 함께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지난해 6월 CTO 산하 소프트웨어센터에 인공지능연구소를 신설하고 음성인식, 영상인식, 생체인식, 딥 러닝 알고리즘 등 AI 제품·서비스 개발에 필수적인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연결해 소비자가 모든 생활 영역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지난 5월 이스라엘에서는 LG전자 로봇청소기 ‘홈봇’이 집에 들어온 낯선 남자의 사진을 찍어 주인에게 전달해 도둑을 내쫓은 일이 화제가 됐다. 홈봇에 탑재된 ‘홈가드 기능’ 덕분이다. 이처럼 ‘연결성’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소비자 혜택이 무궁무진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구글·아마존과 ‘열린 생태계’ 구축

LG전자는 가전과 로봇에 자체 AI 플랫폼인 ‘딥씽큐’뿐만 아니라 구글 어시스턴트 등 타사 AI 플랫폼을 함께 탑재하고 있다. 지도 검색과 맛집 탐색 등 구글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은 구글 어시스턴트를 통해, 방영 중인 방송 프로그램 검색 등 TV 고유의 기능과 관련된 부분은 딥씽큐를 통해 서비스하는 식이다.

LG전자 스마트 TV와 디지털 사이니지 등에 적용하는 독자 운영체제인 ‘웹OS’도 개방했다. 본격적으로 ‘열린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 등 타사 플랫폼과의 연계는 물론 다른 브랜드 가전제품과의 호환도 가능하다. 로봇,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등과도 자유롭게 연결된다.

LG전자 관계자는 구글 아마존과의 협력 과정에서 발생하는 ‘종속 문제’에 대해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LG전자가 가진 하드웨어를 굉장히 탐내고 있다”며 “경쟁적으로 여러 업체가 협력 관계를 제안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협상력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