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했다. 올해부터 5년간 연평균 7.3%씩 늘려 2020년부터 예산 500조원대 시대를 열기로 했다. 지난해 작성한 중기 계획상의 재정지출 증가율(5.8%)과 2018~2022년 연평균 재정수입 증가율(5.2%), 경상성장률(4.6%)을 훌쩍 웃도는 지출 증가율이다. 이 같은 사상 초유의 재정 확대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재정수지 악화와 국가부채 급증으로 재정건전성이 단기간에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 예측대로 세수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으면 중기적으로 ‘재정절벽’에 직면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재정 지출 '가속페달' 2020년엔 예산 500조… 허리 휘는 국가재정
◆세수 앞으로도 잘 걷힐까

정부가 28일 발표한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이 기간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은 7.3%로 설정됐다. 정부가 2004년부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한 이후 사상 최대 증가율이다. 기존에 가장 높았던 ‘2007∼201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의 증가율(6.9%)을 0.4%포인트 초과한 것이기도 하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재정지출 470조5000억원에 이어 2020년에는 504조6000억원으로 500조원을 처음 돌파한다. 지난해(400조5000억원) 처음 400조원대에 진입한 뒤 3년 만에 100조원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정부가 이 같은 팽창 일변도의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한 것은 세수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3조원이,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19조원의 세금이 당초 전망보다 더 걷혔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 지속, 올해 법인·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내년 종합부동산세 인상 영향 등에 따라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세수 호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6일 국가재정포럼 기조연설에서 “국가재정운용계획상 5년 동안의 세수가 당초 계획보다 60조원 이상 더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기 당분간 괜찮을까

세수 호조가 예상되긴 해도 정부의 중기 계획상 재정수입 증가율은 재정지출 증가율을 밑돈다. 정부는 2018~2022년 재정수입이 연평균 5.2%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재정지출 증가율보다 2.1%포인트 낮다. 2017~2021년 계획에서는 재정지출 증가율이 5.8%, 재정수입 증가율이 5.5%로 0.3%포인트 차에 불과했다. 재정지출 증가율이 재정수입 증가율을 훌쩍 웃돌면서 2020년에는 재정지출이 재정수입을 5000억원 초과하고, 2022년에는 초과 규모가 19조8000억원으로 벌어진다. 신규 적자국채 발행 규모도 올해 28조8000억원에서 내년 30조1000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재정수지 적자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올해 28조5000억원인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2022년 63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총수입 중 재정지출에 직접 활용할 수 없는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뒤 총지출을 뺀 금액으로,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도 같은 기간 -1.6%에서 -2.9%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최상대 기재부 재정혁신국장은 “2020년 이후에는 재정 수입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있다”며 “반면 지출은 대폭 증액되기 때문에 관리재정수지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708조2000억원인 국가채무도 빠르게 늘어 2022년(897조8000억원)엔 9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됐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같은 기간 39.5%에서 2020년 40%를 넘어선 뒤 2022년 41.6%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박완규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당장 올해 목표로 삼고 있는 경제성장률 2.9% 달성도 어려운 상황에서 무리하게 재정지출만 늘리려 하고 있다”며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 재정수지 악화를 넘어 재정절벽에 부닥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39.4%

내년 국내총생산(GDP)에서 국가채무(741조원)가 차지하는 비율. 정부는 올해(39.5%)보다 0.1%포인트가량 낮아질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 비율은 2022년 41.6%에 달하는 등 장기적으로는 증가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