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의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의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기업 오너 일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시너지를 내기 위한 계열사 간 정상 거래까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괄 규제안으로 야구단 축구단 등 입법 취지와 무관한 계열사 거래까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대거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소유 규제 등 사전 행위 규제로 기업의 신규 사업 확장과 구조조정, 사업 재편 등 경영 활동이 움츠러들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업 376곳 증가

LG·두산 야구팀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재계 "획일적 기준" 당혹
공정거래위원회는 26일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고 밝혔다. 1980년 법이 제정된 이후 38년 만의 전면 개정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변화된 경제 여건과 공정경제·혁신성장 등 시대적 요구를 반영했다”고 법 개정 취지를 강조했다. 주요 규제 대상인 국내 기업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불황기에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규제가 강화된 것을 크게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제도 개편안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사전 규제를 강화한 부분이다. 정부의 법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은 231곳에서 607곳으로 376곳(162%) 늘어난다. 애초 두 배가량으로 늘어날 것이란 예상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삼성생명 현대글로비스 등 대기업 오너 일가들이 지분 20~29.9%를 들고 있는 27개 계열사가 새롭게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또 이들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349곳도 규제 대상에 올랐다.

◆계열사 간 정상 거래도 위축

기업들은 내부 거래가 위법한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규제만 강화됐다고 항변했다. SK그룹 해운 계열사인 SK해운은 지주사인 SK(주)가 지분 57%를 가진 비상장사다. 정부안대로라면 SK해운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게 된다. 지난해 매출 6971억원의 34%인 2377억원이 내부 거래다. 계열사인 SK에너지의 원유 운송이나 SK종합화학의 나프타 등 원재료 운송 업무 등이 대표적이다. 회사 관계자는 “위법 행위를 확실하게 피하려면 계열사 간 내부 거래 일부를 해외 해운사로 넘기거나 해외 업체들과 입찰 경쟁이라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물론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고 모든 내부 거래 행위가 법 위반 사항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 기준이 모호하고 판례도 없어 기업들로선 아예 규제 대상의 범위에서 제외되는 방안을 택한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부 교수는 “일괄 규제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법과 시행령에서 예외 규정을 두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것도 커다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효율성 증대 효과가 있거나 △보안성이 요구되거나 △긴급성이 요구되는 등 3가지 유형에는 일감 몰아주기 적용을 면해주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예외 적용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정부 유권해석 결과에 따라 자칫 법 위반 가능성이 생길 우려가 있어서다.

◆불필요한 규제도 늘어

사업 초기 리스크가 크거나 어쩔 수 없이 적자 사업을 감당해야 하는 사업도 규제 대상에 올랐다. 야구단을 운영하는 LG스포츠와 두산베어스, 축구단을 운영하는 GS스포츠와 이랜드스포츠 등 스포츠사업을 운영하는 비상장사들이 대표적인 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브랜드 이미지 등을 목적으로 매년 수십억원씩 적자를 보면서 회사를 운영하는데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거냐”며 곤혹스러워했다. 하림그룹은 농지법상 농업인 지분 소유 규제 등으로 분사한 자회사들이 규제 대상에 올라 당혹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개정안엔 대기업 계열사들이 사업 재편, 구조조정, 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하기 어렵게 하는 규제도 다수 포함됐다. 재계에서는 △지주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신규 기업집단의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등을 예로 들었다.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수사할 수 있는 ‘전속고발권 제도’가 일부 폐지된 것도 기업들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좌동욱/이태훈/김보형/김진수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