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끝) 한국 위스키의 꿈

위스키 시장 다시 일으키려면
원액 제조 공장 반드시 필요

첨단 기술·고유문화 융합해
한국스타일 위스키 만들어야
12편의 위스키 기행을 써내려 가면서 위스키의 탄생지이자, 21세기 경제 신화를 이뤄낸 아일랜드의 주류 정책 보고서가 떠올랐다. 보고서 첫머리에서 아일랜드의 주류산업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대만 카발란, 일본 닛카, 인도 암루트 등 아시아의 명주들.

대만 카발란, 일본 닛카, 인도 암루트 등 아시아의 명주들.

‘9만2000여 명의 고용, 20억달러의 농축산물 소비, 수출 10억달러와 납세 20억달러….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기네스 맥주, 제임슨 위스키, 베일리스 리큐르 브랜드는 어느덧 자신만이 아니라 아일랜드를 홍보하는 기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1950~1960년대 한국과 비견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달러를 넘는 경제 선진국이 됐다. 2025년까지 고부가가치산업으로서 주류산업에 15억달러 투자를 제안하는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도 눈여겨볼 만하다.

1981년 위스키 국산화 정책으로 국내에 3개의 위스키 공장이 설립된 이래 한국 위스키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1991년 주류 수입 개방 이후에 위스키 원액 공장을 폐쇄한 한국 위스키 시장은 1990년대 말 대비 절반 이하로 쇠퇴했다. 2010년대에도 위스키 시장은 매년 축소돼 판매량 1, 2위를 다투던 다국적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의 주류산업과 음주문화는 크게 변화하고 있다. 미미하던 와인시장은 이미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고, 희석식 소주는 저도주의 경향이 두드러진다. 위스키가 쇠퇴하고, 약주와 청주 시장이 축소됐다. 사회적으로는 여성 음주 인구가 늘어나고, 접대를 위한 음주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 외에도 이웃 중국, 대만,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이들 국가는 자국의 주류산업을 성공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관계 중시에서 법치 중시로 사회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마오타이(茅台), 우량예(五粮液) 등 명주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일본은 위스키 공장 견학과 드라마를 활용한 위스키 장인들의 홍보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대만에서는 주류 수입 자유화에 대응한 위스키 국산화로 오히려 세계 위스키 지도를 바꾸고 있다.

프랑스에서 와인, 독일에서 맥주,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등은 전통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전통주들도 그 기원을 살펴보면 대개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것이다. 그 지역 문화와 결합돼 세월이 지난 후 지역사회와 동화돼 전통주가 된 것이다. 일본에서도 산토리, 닛카 위스키 지위는 전통주와 대등한 수준이다. 이들은 명주로서 일본인의 자부심에 자리를 잡았다.

명주란 무엇일까. 뭇사람들로부터 그 술의 향미에 대해 칭송을 듣고, 그 제품 이야기가 회자되며, 많은 사람이 사고 싶도록 매력을 뿜는 술이 아닐까. 세계의 명품들은 생산 지역, 제조장인, 그리고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많은 이야깃거리가 따라다닌다. 스카치위스키 애호가들이 위스키 공장을 포함한 스코틀랜드 관광을 하거나 스코틀랜드 사람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술은 그 지역 농산물로 제조돼 그 지역의 식문화 및 관광 문화와 어우러져 지역 농산물 소비를 촉진하고, 지속적인 고용을 통해 지역 경제를 부양하고 있다. 술의 원료나 완제품을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일본이나 대만에서의 위스키 성공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위스키 시장을 다시 일으키려면 원액 제조 공장이 있어야 한다. 술은 그 지역 문화로 여겨지므로 그 지역 생산이 없이는 뿌리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 위스키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토종 주류기업인 골든블루가 코리안 위스키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위스키 소비량은 세계 상위권. 이런 나라에 자국에서 발효, 증류, 저장, 숙성된 자국의 위스키가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문화와 어우러진 우리 위스키가 우리 전통주, 명주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첨단 과학기술과 고유문화를 융합해 한국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위스키를 전 세계인들이 즐겨 마시는 술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K팝을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것처럼.

[이종기의 위스키 여행] 한국서 만든 위스키로 세계 애호가들과 함께 건배하는 날 오길…

산토리가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일본 스타일 위스키를 탄생시키고, 대만에서 열대 기후를 이용해 속성 위스키를 만들어 낸 것이 좋은 예다.

변화해가는 한국 문화에 끊임없이 발맞추어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한국 위스키가 탄생돼 세계 애호가들과 함께 건배하는 날을 그려 본다.

이종기 < 양조증류 전문가·세계술문화박물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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