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장기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올리고 가입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의 정책자문안이 나오면서 논란이 거세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대로 죽도록 보험료만 내고 나중에 못 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부터 심지어 "지금까지 낸 돈 돌려주고 차라리 폐지하라"는 극단적 목소리까지 흘러나오는 등 반발 여론이 비등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질 테니 국민연금을 폐지해달라"는 주장을 담은 청원이 끊임없이 올라와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1988년 전 국민 행복시대를 연다는 슬로건 아래 도입돼 올해도 30주년을 맞은 국민연금제도는 과연 없앨 수 있을까? 22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 폐지는 절차상 국민합의를 거쳐 국회에서 국민연금제도의 법적 근거가 되는 국민연금법을 없애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질적으로는 국민연금 폐지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세대 간, 세대 내 연대'라는 사회보험의 운영원리를 떠나서 순수하게 경제적으로만 따지더라도 청산비용이 유지비용보다 훨씬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을 없애더라도 국민은 더 큰 조세부담을 짊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에 가입해서 성실하게 보험료를 내고 최소가입기간 10년을 채우면 노후 연금을 탈 시기에 연금수급권이 주어진다.
이렇게 해서 올해 5월말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는 447만877명(남자 258만4천896명, 여자 188만5천981명)에 달한다.
이들이 확보한 연금급여청구권은 정당한 기득권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다.
헌법의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따라 연금수급권은 재산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국민연금제도를 폐지하더라도 어떻게든 이들이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줘야 하며, 만약 기금이 모자라면 세금을 조달해서라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다.
5월말 현재 국민연금 적립기금 규모는 634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거대한 돈을 탈탈 털어서 주더라도 연금 지급액을 충당하기 버겁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가가 존립하는 한 영속적으로 운영되는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에는 비록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납세자연맹 추산 결과를 보면, 2017년말 현재 수급자와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국민연금 충당부채(책임준비금)는 1천242조원이다.
그러나 현재 적립기금은 절반인 621조원으로, 미적립부채(잠재부채)가 621조원에 달한다.
이는 미래세대, 후세대가 세금 등으로 부담해야 할 빚인 셈이다.
이와는 별도로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기존 수급자와 가입자에게 그간 거둔 돈을 돌려주려면 현재 금융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수백조원을 헐어야 하는 점도 큰 문제로 꼽힌다.
만약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금융자산을 한꺼번에 현금화하고자 내다 팔면 국내외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시장은 붕괴위기에 직면하며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 9.67%, 현대자동차 8.44%, SK 9.20% 등을 보유하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대주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주식을 처분할 경우 주가 폭락은 불가피하며, 국내 금융시장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금운용본부는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안정적인 성과 제고와 위험 분산을 위해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추진하며 국내외 채권과 주식, 부동산 등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
5월 현재 투자부문과 비중을 보면, 국내주식 130조원(20.5%), 해외주식 114조원(18.0%), 국내채권 295조원(46.5%), 해외채권 23조8천억원(3.8%), 대체투자 67조3천억원(10.6%), 기타부문 1조원(0.2%) 등이다.
기금 중에서 현금성 자산에 해당하는 단기자금은 2조2천억원(0.4%)에 불과하다.
국민연금기금은 제도도입 때인 1988년 5천300억원으로 시작해 2003년 100조원을 돌파한 이래 올해 5월말 현재 634조원에 이른다.
국민연금은 일본 공적연금펀드,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힐 정도로 거대기금을 굴리고 있다.
4차 재정계산 결과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2041년에 1천778조원으로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립기금의 비율은 2034년 48.2%까지 증가한 후 감소할 것으로 추계됐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일각에서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각자 알아서 노후를 준비토록 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국민 개인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통계청의 2017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62.1%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하고 있고, 사적연금을 통한 노후준비는 9.8%에 불과했다.
김 이사장은 이런 현실에서 "만일 국민연금 없이 각자 알아서 노후준비를 한다면 대부분 사람은 미래 노후생활 준비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가가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된다"고 경고했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폐지된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인 노인 빈곤율이 더 악화해 사회불안이 높아질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정부가 책임지고 연금지급을 보장하므로,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반드시 지급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생 국민연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최대 30%에 불과하다"며 "국민연금만 한 제도를 가진 나라는 없으니, 아끼고 키워야지 폐지하는 것은 반(反)복지다"고 말했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과 안효준 BNK글로벌총괄부문장 등 13명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재공모를 위한 면접심사를 치렀다. 국민연금은 다음달 635조원의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기금운용본부장을 선임할 계획이다.국민연금 기금이사추천위원회는 지난달 19일 기금운용본부장 공개모집에 지원한 30명의 후보 가운데 서류전형을 통과한 13명을 대상으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국민연금공단 남부지역본부에서 면접심사를 21일 했다.주 전 사장과 안 부문장, 채규성 BNY멜론은행 서울지점 대표, 정재호 전 새마을금고 최고투자책임자, 이기환 인하대 금융투자학과 교수, 류영재 서스틴베스틴 대표, 이승철 전 산림조합 전무 등이 면접을 봤다. 청와대 지원설 등으로 인해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는 주 전 사장은 지원 동기를 묻는 기자들의 말에 “공적인 일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이라고 했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회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주 전 사장의 내정설을 묻는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장관은 인선에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주 전 사장은 자산운용 경험은 없지만 더불어민주당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을 지내는 등 문재인 정부와 인연이 있다.국민연금 기금이사추천위원회는 면접심사 이후 인사 검증 등을 통해 복수의 최종 후보를 가린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최종 후보 한 명을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임명한다.지난해 7월 7대 기금운용본부장인 강면욱 본부장이 사퇴한 이후 1년간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공석이다. 지난 2월 시작한 1차 공모는 4개월 동안 시장에 온갖 억측만 남긴 채 불발됐다.이 와중에 1년간 본부장 직무대리를 맡아 기금운용본부를 이끌어온 조인식 해외증권실장마저 지난달 4일 돌연 사의를 밝히면서 기금운용본부장과 8개 실장 자리 가운데 절반인 네 자리가 공석으로 남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결국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장을 재공모하기로 하고 서류지원을 받아 이날 면접심사를 했다.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연기금은 ‘증시의 수비수’로 불린다. 주로 시장이 급락할 때 매수에 나서 추가 하락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연기금은 외국인의 ‘셀 코리아’에 가세해 코스피지수를 더 끌어내리고 있다. 수비수가 사라진 국내 증시는 작은 악재에도 뚫리는 일이 잦아졌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이 연말 목표치에 근접한 만큼 연기금의 매도세가 점차 누그러질 것으로 내다봤다.◆포트폴리오 조정 영향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월 이후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6178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 기간 외국인(1조1358억원)보다 더 많이 팔았다. 연기금은 코스피지수가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주당순자산) 1배 밑인 2300선 아래로 떨어졌는데도 좀처럼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7월 이후 외국인은 4512억원어치 순매수로 돌아섰지만 연기금은 매도 규모(1조4136억원)를 더 키웠다.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주식시장의 안전판이 사라졌다는 심리적 불안에 하락세가 커지고 있다”며 “국내 증시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불신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펀드매니저는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 수급에 더욱 휘둘릴 것”이라고 우려했다.연기금의 ‘변심’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우선 국내 주식의 투자 수익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연기금 중 가장 규모가 큰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가 공시한 5월 말 기준 자산군별 수익률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식은 -1.18%로 유일하게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수익률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조절하다 보니 국내 주식 비중을 줄였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올 들어 해외 주식을 약 6조원, 국내 채권을 5조7000억원어치 순매수하며 비중을 늘렸지만 국내 주식은 1조4000억원어치 줄였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비중을 더 축소할 계획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5월 말 기준 20.5%인 국내 주식 비중을 2023년 15% 안팎까지 축소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올해 말 비중 목표치는 18.7%다.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1년째 공석이라는 것도 연기금이 국내 주식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로 거론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가뜩이나 보수적인 국민연금에 수장까지 없다 보니 주가가 떨어졌을 때 저가 매수에 나서줘야 하는데 다들 책임을 안 지려고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반도체 팔고 엔터주 사고다만 연기금의 매도세는 연말로 갈수록 누그러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동안 대규모 순매도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이 연말 목표치인 18.7%에 근접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하루도 빠짐 없이 순매도하던 연기금은 이날 오랜만에 321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날 외국인(1068억원)과 연기금의 동반 매수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는 22.18포인트(0.99%) 오른 2270.06에 마감했다.연기금이 주식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려는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연기금은 주식 포트폴리오 대부분이 자동차, 반도체, 조선, 철강, 화학 등 제조업 중심의 국내 수출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 문제로 꼽혀왔다.연기금은 지난 6월 이후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는 와중에도 코스닥시장에선 1269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등 대형주들을 내다팔고 카카오, 삼성SDI, LG화학, CJ ENM, 와이지엔터테인먼트 등 전기차 배터리 관련주, 엔터테인먼트주 등을 사들였다. 상장지수펀드(ETF)도 대형주 위주인 KODEX200을 팔고 중소형주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TIGER KRX300, KODEX KRX300 등을 순매수했다.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한국 증시가 해외 증시보다 하락폭이 더 컸던 데는 수급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며 “PBR이 1배를 밑돌고 있고 외국인과 연기금의 수급이 개선되고 있는 만큼 코스피지수가 바닥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국민이 동의한다면 보험료율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21일 밝혔다. 박 장관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 출석, 정부의 국민연금 개편안 마련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문가들은 보험료율 인상을 건의해 왔다"며 "지금부터 공청회 안을 근간으로 9월 말까지 정부 안을 만들 생각"이라고 설명했다.특히,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에 대해서도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국민이 낸 만큼 연금을 돌려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그는 "국민의 강력한 요구가 있으면 지급보장 규정을 명문화 하는 것도 방안으로, 전문가들이 지급보장을 명문화하도록 의견을 줬다"면서 "국민의 불안이 크다면 이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박 장관은 "지급보장을 명문화할 경우 국가 채무 부담이라는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법을 기술하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지나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국민연금은 '부분 적립 방식'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고갈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국민들이 지나치게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제도개선을 논의할 때마다 소득보장보다는 기금고갈에 초점을 맞춰 언론보도가 이뤄지고 논의가 진행되니 국민 불안이 가중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선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민연금 개편안에 대한 질의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부가 국민연금으로 소득보장을 한다고 그럴듯하게 만들어놓고는 실제로 보험료율 인상도 고려하는가"라고 물었다. 또 "복지부가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은 "국민연금 기금고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는 데 지급보장을 법에 명문화하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불안감을 없애는 데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박 장관은 "9월 말∼10월 말까지 정부 안이 갖춰지는 과정에 국회 복지위와 상의하고, 최종 정부 안이 복수 안이든 단수 안이든 만들어지면 국회에 보고할 것"이라며 "이를 기초로 국회가 입법화하는 과정에서도 여론 수렴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박 장관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한 후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올해 기금 수익률이 작년보다는 떨어졌지만,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는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에 비하면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반박했다.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