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합의문 서명식’에서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합의문 서명식’에서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38년 만의 전속고발권 폐지로 기업들은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외에 검찰까지 상대해야 할 처지가 됐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기업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을 표방한 별건수사가 공공연히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검찰 수사 때도 리니언시 적용

공정위와 법무부가 21일 전속고발권 폐지와 관련해 합의한 사안을 보면 가격담합, 생산량 조절, 시장분할, 입찰담합 등 중대한 담합행위(경성담합)는 공정위 고발 없이도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다. 나머지 연성담합(공동 연구개발, 정보교환 등) 사건은 지금처럼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 수사가 가능하다. 그동안 공정위가 조사한 담합사건의 90% 이상이 경성담합이다.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금지, 기업결합 제한, 지주회사 행위 제한, 상호출자·순환출자 금지, 금융지주회사 의결권 제한,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등 담합사건 외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는 공정위가 계속 전속고발권을 갖는다.

현재는 공정위 행정처분(과징금 부과)에만 자진신고자 감면(리니언시) 제도를 적용했는데 앞으로는 형사처벌에도 리니언시를 도입한다. 공정위에 제일 먼저 담합을 자진신고한 기업은 과징금 전액 면제, 두 번째 신고 기업은 50%를 감면해준다. 이와 비슷하게 검찰에 담합을 제일 먼저 자진신고한 기업은 형을 면제하고, 두 번째 신고 기업은 형을 감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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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징금 감면 취소도 가능

공정위와 법무부는 “일반적인 자진신고 사건은 공정위가 우선 조사하되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거나 국민적 관심,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자진신고 사건은 검찰이 우선 수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중요한 사건은 검찰이 조사한다는데 그 기준이 모호하다”며 “공정위와 검찰이 서로 조사하겠다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정위와 검찰 간 경쟁이 붙으면 기업인들이 양쪽 기관에 수시로 불려다닐 우려가 있다”고 했다. 대형 로펌을 선임할 형편이 안 되는 중소기업이 가장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가 자진신고자에 준 감면 혜택을 사후에 취소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기업들은 ‘개악(改惡)’으로 꼽고 있다. 지금은 공정위가 감면 혜택을 주면 이를 취소할 수 없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개편안에 ‘과징금을 감면받은 후 행정소송에 비협조하는 자는 행정면책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기로 했다.

◆공정위가 기득권 놓은 이유는

1980년 공정위에 전속고발권이 생길 때부터 검찰은 이 제도에 반대해왔다. 공소권은 검찰만 갖는다는 ‘기소독점주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도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공정위 간부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정거래법 개편 특별위원회가 지난 6월 “전속고발권 보완·유지 의견이 폐지 의견보다 많았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전속고발권은 유지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검찰이 6월 공정위를 압수수색하고 지난달 전·현직 간부들을 구속시키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검찰은 공정위가 16개 기업에 압력을 넣어 2012년부터 작년까지 18명의 퇴직 공무원을 재취업시켰다고 발표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공정위의 조직적 비리를 대대적으로 들춰낸 것이 전속고발권 폐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전속고발권

담합 등 공정거래법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게 한 제도. 고발권을 남용해 기업의 경제활동을 어렵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80년 도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가 자유롭게 고발할 권리를 이 제도가 막고 있다며 대선 때 폐지를 공약했다.

■리니언시

담합행위를 한 기업이 자진신고할 경우 처벌을 경감하거나 면제하는 제도. 어떤 기업이 자진신고했는지는 공정거래위원회만 알고 있는 게 원칙이다.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이 정보를 검찰과 공유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태훈/안대규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