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벤처지주회사 설립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벤처업계에서는 이 제도가 활성화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21일 공정거래법 개편 당정협의 후 브리핑에서 “벤처지주사 설립 자산총액 요건을 5000억원에서 200억~300억원 수준으로 완화하겠다”며 “(벤처기업은 아니지만) 연구개발(R&D)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도 벤처자회사에 포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벤처업계와 대기업들은 벤처지주사 제도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을 가능하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왔다. CVC는 대기업이 자회사 형태로 설립한 벤처캐피털(벤처기업 투자 전문회사)로 미국 등에서 활성화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CVC가 금융회사로 분류돼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겸영 금지) 원칙에 따라 설립이 불가능하다.

벤처지주사 제도는 지주회사가 소유한 전체 자회사의 절반 이상(주식가액 기준)이 벤처기업이면 벤처지주사로 분류해 벤처기업의 계열사 편입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등의 혜택을 주는 것이다. 2001년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벤처지주사로 지정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투자 위험을 안고 가는 게 벤처인데, 투자 실패 시 지주사 최고경영자(CEO)가 고스란히 책임지는 구조에서 지주사 형태로 벤처에 투자하려는 대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VC 등 벤처캐피털은 기업 10곳에 투자해 9곳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한 곳에서만 대박을 치면 용인되는 구조”라며 “대기업이 벤처기업에 많이 투자해야 창업생태계가 활성화되는데 벤처지주사로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CVC 설립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김병관 민주당 의원은 벤처캐피털을 금융회사 범위에서 제외해 일반 지주회사가 벤처캐피털을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지난 6월 발의했다.

이태훈/배정철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