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17일 연금개편의 밑그림을 내놨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험료율을 올리고 수급 시기를 늦추는 안이 사전에 공개되면서 반발 여론이 비등해 정부안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정부안을 마련해 국회에 넘기더라도 여론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이 선뜻 입법화에 나설지도 의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위원회 개편안을 바탕으로 정부안을 확정해 다음달 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후 국회는 노사정대표자회의나 별도의 사회적 기구를 구성해 합의안을 마련한 뒤 여야 합의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 20년간 그랬던 것처럼 여론의 반발에 밀려 ‘반쪽짜리’ 개편에 그치거나 이해당사자들의 집단 반발, 이념 대결 등이 얽히면서 아예 백지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개편 의지가 위축됐다. 위원회 개편안에 국민적 공분이 일자 정부는 “정부안이 아니다”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고 문재인 대통령은 “(개편안 내용에) 나도 납득할 수 없다”고 제동을 걸었다. 연금개혁이 지지층의 집단 이탈을 초래할 수 있는 ‘화약고’라는 인식이 워낙 강해서다.

선진국에서 2000년 전후로 연금개혁에 잇따라 손을 댔다가 국민 반발 때문에 정권이 흔들린 사례가 적지 않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로마노 프로디 전 이탈리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등이 연금개혁을 추진했다가 줄줄이 중도 낙마하거나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최근 연금개혁에 나서면서 80%를 웃돌던 콘크리트 지지율이 50% 이하로 추락했다.

입법화 과정 역시 험로가 예상된다. 노동계는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선언하면서 첫 일성으로 국민연금 제도 ‘개악’을 막겠다고 했다. 정부는 1997년에도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2.65%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노동계 반발에 포기했다.

또 2020년 국회의원 선거와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점이 정치권으로선 부담이다. 2003년과 2006년에도 보험료 인상을 골자로 하는 개편안이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결국 좌초됐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개편안의 불합리한 점이나 부족한 부분은 논의를 통해 수정해야 하지만 자칫 ‘미래 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지워선 안 된다’는 개편의 근본 취지까지 흐트러지고 또다시 ‘땜질 처방’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