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연천군 전곡읍 군사시설보호구역에 속한 한 제조업체는 300m 떨어진 방공호의 사계를 가린다는 이유로 수년째 공장을 증축하지 못하고 있다.  /한경DB
경기 연천군 전곡읍 군사시설보호구역에 속한 한 제조업체는 300m 떨어진 방공호의 사계를 가린다는 이유로 수년째 공장을 증축하지 못하고 있다. /한경DB
국내 최대 간장 제조업체인 샘표식품은 16년째 경기 이천공장을 증설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간장 주문량이 늘면서 증설이 절실하지만 수도권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해 거래가 취소된 경우도 다반사라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샘표식품 관계자는 “경기도에 지속적으로 증설 허가를 요청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고 있다”며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규제가 국내외 기업들의 신규 투자를 가로막고 해외로 내모는 대표 규제로 지목받고 있다. 일부 수도권 지역은 겹겹이 쌓인 규제에 가로막혀 웬만한 지방 도시보다도 낙후된 채 방치되고 있다. 선진국들이 앞다퉈 수도권 규제 타파에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만 ‘갈라파고스 규제’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보다 낙후되기도

'거미줄 규제'에 신규투자 포기… '유턴기업' 稅감면도 수도권만 제외
수도권 규제는 1982년 제정된 핵심법안인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을 비롯해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 ‘군사시설보호법’ ‘팔당특별대책지역’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정부는 수정법 등에 따라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에 대한 총허용량을 주기적으로 정하고 있다. 지난 4월 국토교통부가 정한 총허용량은 올해부터 2020년 말까지 544만5000㎡다. 3년간 수도권에 산업단지를 하나 더 지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 규모다.

수도권 일부 지역은 이 같은 규제에 묶여 있다 보니 지방보다도 낙후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천 강화·옹진군과 경기 동북부가 대표 지역으로 꼽힌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5월 “수도권 규제 대상에서 강화·옹진은 제외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정책 제언집을 냈다. 중기중앙회는 “접경지역인 강화·옹진군은 수정법뿐만 아니라 군사시설보호법 등 각종 규제에도 묶여 있다”며 “옹진군의 개발 상황은 전남 무안, 경북 고령, 경남 고성군 등 지방에 비해서도 크게 뒤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경기 연천군은 강원 횡성군보다도 낙후돼 있다. 수도권 규제에 더해 60여 년간 군사 규제까지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기업 내쫓는 규제

수도권 규제는 기업 신규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5년 수도권 기업 118곳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수도권 62개 기업은 2009~2014년 수도권 규제 등으로 투자 시기를 놓쳐 3조3329억원(미투자금액, 금융비용 등)의 경제적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1만2059명에 달하는 일자리 창출 기회도 사라졌다. 외국 기업이 한국 진출을 포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2006년 아시아 지역 전체에 공급할 백신공장을 경기도에 지으려다 공장총량제 규제로 인해 싱가포르로 발길을 돌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해외에 진출했던 기업들이 한국으로 유턴하는 데도 수도권 규제가 장애물이 되고 있다. 2013년 8월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일명 유턴기업지원법)이 제정돼 유턴기업은 조세 감면, 자금·입지·인력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수도권은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유턴기업은 2014년 22개, 2016년 12개였지만 올해는 현재까지 7개에 불과하다.

한국만 역행

선진국들은 잇따라 수도권 규제를 풀어주는 추세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수도권 구시가지의 공장 설립에 관한 법’을 폐지하고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을 제정하면서 수도권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영국은 1982년 수도권에 대한 공장개발허가제를 폐지한 데 이어 2000년대 들어서는 템스강 하구 지역을 성장주도지역으로 개발하는 ‘템스 게이트웨이 플랜’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1982년 수도권에 공장을 신축할 때 과밀부담금을 매기는 ‘르드방스 규제’를 없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만 수도권 규제를 고집하면서 스스로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에 한해서라도 수도권 규제를 풀어서 기업이 제대로 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