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수 2만2000여 명의 국내 최대 공기업 한국전력. 2년 전만 해도 상반기 6조31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던 이 회사는 올해 같은 기간 8147억원 적자를 봤다. 부채는 114조5700억원으로 늘었다.
이 회사가 올해 상반기 기준 사상 최대인 29조432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실적 악화를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상반기 전기 판매수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조5000억원(4.1%) 늘었다. 그런데도 큰 손실을 본 건 도매사업자인 한전이 값싼 전기(원자력) 대신 비싼 전기(액화천연가스·LNG)를 대량 구매했기 때문이라는 점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한전 주가는 연일 약세다. 14일엔 전날보다 2.57% 떨어진 3만350원으로 마감했다. 4년9개월 만의 최저치다. 주당순자산비율(PBR)은 0.27배로 떨어졌다. 주주들이 의견을 공유하는 온라인 게시판은 들끓고 있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피해를 왜 주주들이 져야 하느냐는 성토가 대부분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같은 민원이 다수 올라왔다.
정부는 한전 적자가 원전 가동률 하락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탈원전 정책과는 별개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정부의 부실시공 탓에 안전점검과 정비를 대폭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브리핑을 자청해 “다수 원전이 가동 정지된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고 했다.
예컨대 원전 납품비리 사건이 터졌던 2013년 최대 10기, 경주 지진이 발생했던 2016년에는 한때 11기의 원전이 멈췄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총 24기의 원전 중 10기를 멈춘 데 이어 올해엔 최대 13기나 정지했다. 작년과 올해는 새 정부의 ‘탈원전 선언’ 외에 다른 변수가 없었다.
원전업계에선 에너지당국을 사실상 장악한 환경단체와 환경론자들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이 탈원전 정책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다. 환경단체는 현 정부의 주요 지지세력 중 하나다. 원자력 관련 최고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과 일부 위원은 이미 환경단체 출신으로 교체됐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안전재단 등에도 환경주의자들이 포진해 있다.
정부가 탈원전을 고수하는 한 한전의 적자 및 부채는 누적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결국 그 피해는 한전 주주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철판 부식 등 안전문제로 정비기간 늘어…인위적 정지 아냐"신고리 4호기, '지진 안전성' 평가받느라 준공 지연될 듯정부가 한국전력 적자의 원인 중 하나인 낮은 원전 이용률이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과 무관하다고 다시 강조했다.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한전의 상반기 영업적자가 탈원전 때문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산업부는 상반기 원전 이용률이 낮은 것은 일부 보도대로 정부가 인위적으로 원전 가동을 중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에 건설한 원전에서 부실시공 등의 문제가 발견돼 정비 기간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올해 상반기 전체 가동 원전의 총 계획예방정비일수는 1천700일로 작년 상반기 1천80일보다 늘었다.산업부는 정비일수가 증가한 가장 큰 원인이 2016년 6월 한빛 2호기에서 격납건물 철판 부식이 발견된 이후 모든 원전을 점검했는데 9기에서 철판 부식이, 11기에서 콘크리트 결함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원자로를 둘러싼 격납건물 철판과 콘크리트는 중대사고 발생 시 방사선 누출을 막아주는 설비여서 부식이나 공극 등의 하자가 있으면 국민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주기적인 계획예방정비의 경우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통상 약 2개월이 걸리지만, 이런 문제가 발견되고 한국수력원자력이 관련 기준과 절차에 따라 철저히 정비하면서 정비 기간이 길어졌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예를 들어 고리 3·4호기는 격납건물 철판 문제 때문에 일반적인 계획예방정비보다 정비가 각각 428일, 242일 지연됐다.신고리 1호기는 원자로냉각재펌프 정비와 설계 개선으로 정비 기간이 363일 늘었고, 월성 3호기는 증기발생기 내부에서 발견된 이물질을 제거하고 중수 누출 사건에 대응하느라 137일이 더 걸렸다.정비가 완료된 원전은 원자력안전법이 정한 기준의 안전성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에만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인을 받아 순차적으로 다시 가동되고 있다.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정부에서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등 관련 법령에 원전 안전검사나 정비와 관련한 새로운 검사 항목이나 절차를 신설하거나 강화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산업부는 정비 때문에 원전 가동을 정지하는 것은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올해 원전 24기 중 한순간에 최대 13기가 가동을 정지했는데, 2013년 원전 납품비리 사건 당시에는 23기 중 10기, 2016년 경주 지진 때는 24기 중 11기가 가동을 정지했다.한수원은 향후 계획예방정비 일정을 고려하면 올해 말에 23기 중 최대 21기의 원전이 가동되면서 원전 이용률이 3분기 76.3%, 4분기 76.5%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현재 건설 중인 일부 원전도 안전성 평가 때문에 가동이 지연될 전망이다.신고리 4호기는 원래 9월 준공 예정이었지만, 산업부와 한수원은 준공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이는 정부가 2016년 경주 지진과 작년 포항 지진 이후 건설 중인 원전에 대한 지진 안전성 평가를 다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신한울 1·2호기도 같은 이유로 상업운전 목표일이 각각 2018년 12월, 2019년 10월에서 더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산업부는 이들 원전의 가동이 지연되더라도 전력수급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산업부는 "에너지전환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의 가동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60여 년에 걸쳐 자연 감소시키는 것"이라며 "2023년까지 추가로 5기의 신규 원전이 준공·운영될 예정으로 현재까지는 수명연장 중단 등 전환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연합뉴스
한국전력은 14일 전남 나주 본사 재난상황실에서 전력수급 비상상황에 대비한 단계별 대응 훈련을 시행했다.재난 수준의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는데 발전기까지 고장 난 상황을 가정해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4개 비상단계별로 각 분야 조처사항을 점검했다.오후 2시 공급 예비력이 400만㎾ 이하로 떨어지자 전력수급비상 '관심' 단계를 발령하며 훈련을 시작했다.재난상황실 직원들은 핫라인·휴대전화 문제메시지·팩스 등 통신수단을 활용해 관계기관과 방송사에 비상상황을 알렸다.한전 사회관계망(SNS) 계정과 누리집에 전력수급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지해 국민에게 알리고, 냉난방기기 원격제어 시스템을 설치한 고객의 설비를 원격 제어해 예비력을 확보했다.이후 예비력이 100만㎾ 이하로 떨어지는 수급비상 '심각' 단계 발령 후 대국민 절전홍보, 긴급절전 약정고객 수요조정, 순환단전 등 단계별 조처를 시행하며 훈련을 이어갔다.김종갑 한전 사장은 이날 훈련에서 "전력수급 비상은 국가적인 재난을 일으킬 수 있는 긴급 상황"이라며 "더위가 다음 달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한전은 올여름 폭염 영향으로 지난달에 하계 최대수요를 경신했지만, 전력 공급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연합뉴스
원전 이용률 하락 원인에 시각차…정부 "보유 원전 최대한 활용"정부가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을 시작한 이후 한국전력의 실적이 악화하면서 탈원전이 원인이 아니냐는 주장이 원자력계 등 일각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정부는 한전의 적자가 탈원전과 관련 없다고 재차 강조했지만, 탈원전 반대 진영에서는 둘이 무관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원자력계 등이 한전의 적자 원인으로 탈원전을 지목하는 이유는 원전 이용률 하락이다.14일 한전에 따르면 올해 원전 이용률은 1분기 55%, 2분기 63%로 2017년 71%나 2016년 80%보다 감소했다.원전 이용률이 하락하면 한전은 원전보다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로 생산한 전력을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LNG 가격은 최근 국제유가 상승으로 작년 상반기 기가줄(GJ)당 1만2천400원에서 올해 상반기 1만3천500원으로 늘었다.발전 원가가 더 비싼 전기를 샀는데 전기요금은 그대로면 한전 실적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정부와 한전도 원전 이용률 저하가 실적 악화의 한 원인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이용률이 낮아진 이유가 탈원전이 아니라고 강조한다.주기적으로 하는 원전 계획예방정비를 하던 중 안전 문제가 추가로 발견돼 어쩔 수 없이 정비가 길어졌다는 것이다.과거에는 계획예방정비가 통상 두 달 정도면 끝났는데 최근 총 11기의 원전에서 격납건물 철판부식, 콘크리트 공극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원전 안전과 관련된 문제들이라 올해 상반기 전체 가동 원전의 총 계획예방정비일수가 작년 상반기 1천80일보다 많은 1천700일로 늘었다.하지만 탈원전 반대 진영에서는 새 정부가 안전 기준을 필요 이상으로 까다롭게 두는 바람에 정비 기간이 늘었다고 주장한다.원전 안전 강화를 일종의 원전 죽이기로 보는 것이다.현재 양측의 시각차가 너무 커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정부는 장기적으로 원전을 줄일 계획이지만 현재 보유한 원전은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원전을 급격히 줄이는 방식은 현실적이지 않기에 당초 정부 정책에도 없었다.현 정부에서 사라지는 원전은 월성 1호기(0.68GW)뿐이며 신고리 5·6호기 등 건설 중인 원전이 완공되면 원전은 2017년 22.5GW에서 2022년 27.5GW로 오히려 일시적으로 늘어난다.정부와 한전은 정비를 마친 원전이 증가하면서 하반기 원전 이용률이 76%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그러나 한전의 적자는 다른 측면에서 탈원전의 취약점을 드러낸다.정부의 에너지전환 목표는 발전 비중을 2017년 원전 30.3%, 석탄 45.4%, LNG 16.9%, 신재생 6.2%에서 2030년 원전 23.9%, 석탄 36.1%, LNG 18.8%, 신재생 20.0%로 조정하는 것이다.정부 계획대로 LNG 발전비중이 증가하면 지금처럼 LNG 가격 변동이 한전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