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깃발이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낡은 관행과 기득권을 뜻하는 용어로 ‘붉은 깃발’을 인용하며 규제혁신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실제 정책에 제대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많다. 역대 대통령들도 하나같이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단단한 기득권의 벽에 부딪혀 번번이 중도 하차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규제 전봇대' 박근혜 '손톱밑 가시'… 문 대통령 '붉은 깃발'… 이번엔 뽑힐까
‘붉은 깃발’은 19세기 영국의 붉은 깃발법에서 유래했다. 영국은 당시 신산업인 자동차로부터 마차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이 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흔들며 자동차 속도와 마차 속도를 맞추도록 했다. 문 대통령은 “이 법 때문에 영국은 자동차산업에서 독일, 미국 등에 뒤처졌다”며 “규제혁신은 속도와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도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을 각각 ‘규제 전봇대’와 ‘손톱 밑 가시’에 빗대며 규제 혁파를 강조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규제개혁 회의 때마다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박 전 대통령 역시 규제를 ‘암덩어리’ ‘원수’라고 표현하며 “단두대에 보내야 한다”는 강한 표현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이해당사자의 반발이 적은 규제는 어느 정도 해소했지만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덩어리 규제’는 제대로 손도 못 댄 채 논의 단계에서 끝났다. 그러는 사이 오히려 산업 현장의 규제는 늘어갔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매년 신설되거나 강화된 규제 건수는 2009년 855건에서 2013년 1099건, 2016년 1454건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정부와 국회의 규제 관련 입법 사례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가 직면한 개혁 중점 과제들은 4차 산업시대를 맞아 해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규제 전봇대나 손톱 밑 가시가 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현장 규제를 지칭했다면 문 대통령이 강조한 붉은 깃발은 신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기존 관행과 기득권을 통칭한다. 그만큼 더 강도 높은 해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최소 접점을 찾은 뒤에는 앞뒤 안 보고 최대한 노력으로 규제개혁을 신속하게 밀어붙여야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