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인터넷은행 규제 혁신은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
3당 민생경제TF 은산분리 완화 논의…진보정당·시민단체는 반대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銀産分離) 규제 완화를 직접 촉구함에 따라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개 교섭단체가 참여하는 민생경제법안 태스크포스(TF)도 이날 회의를 열고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진보성향의 정당·시민단체들이 여전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어 추후 입법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 문대통령 깜짝 등장해 은산분리 완화 돌직구
문 대통령이 이날 '인터넷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역설한 것은 방문 자체로 보나 발언 강도로 보나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혁신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 혁신 IT 기업이 자본과 기술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 선상에 있던 은산분리 완화 문제를 대통령 입으로 직접 거론한 데다 방법론적인 부분까지 정확히 전달했다.

현재 정부·여당은 은산분리 완화의 부작용을 피해갈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되 특례법 형태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쪽으로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이야말로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는 발언은 은산분리 완화가 단순히 인터넷전문은행 문제가 아닌 규제혁신의 시금석 성격임을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민병두 정무위원장, 박영선 의원, 정재호 의원 등을 앞에 두고 "국회가 나서서 입법으로 뒷받침해주시기를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여러 개의 은산분리 입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임에도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데 대한 질책 성격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자본금 부족에 대출 중단 반복하는 케이뱅크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 문제에 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선 것은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 인터넷전문은행이 규제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은산분리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에 제한을 두는 제도다.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의결권이 있는 은행 지분을 4% 넘게 가질 수 없다.

다만 4%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 미행사를 전제로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 최대 10%까지 보유할 수 있다.

올해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모두 출범 1주년을 맞으면서 이 규제의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일차적으로는 현재 자본금으로는 인터넷은행에 줄을 잇는 대출 수요를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케이뱅크는 자본금 부족으로 대출상품마다 월별 한도를 정해놓고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왔다.

인기 있는 대출상품은 매월 10일께 바닥이 나곤 했다.

현행 은산분리 규제 하에서 케이뱅크는 대주주 KT가 혼자서 대규모 증자를 하고 싶어도 불가능하고, 거의 모든 주주가 지분율대로 증자에 참여하거나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해야 한다.

카카오뱅크도 출범 초기 시중은행 대비 파격적으로 낮은 대출금리를 선보였지만 적정성 확보를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 은산분리 완화 우호적 환경…진보 정당·시민단체은 여전히 '벽'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1년을 넘어서면서 은산분리 완화에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상태다.

20대 국회 하반기 원 구성에서 은산분리 완화에 찬성하는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정무위원장으로 선출됐고, 인터넷은행을 위한 특례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이 여당 간사를 맡았다.

현재 국회에는 강석진 김용태 의원이 각각 발의한 은행법 개정안, 정재호 김관영 의원이 각각 내놓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안 등이 계류돼 있다.

때마침 민주당과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개 교섭단체가 참여하는 민생경제법안 태스크포스(TF)도 이날 은산분리 완화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는 단계는 아니지만 규제 완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진보 성향의 정당·시민단체는 여전히 은산분리 완화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의당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이날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를 열고 이런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은 2013년 동양그룹 사태를 사례로 들며, 은산분리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인터넷전문은행을 통해 은산분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비판했다.

/연합뉴스